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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06. 2020

굳이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필름을 되감기도 전에 실수로 필름실을 열어버려서 빛이 샜다


컷의 절반이나 하얗게 타 버렸다. 이건 제주도의 심령 사진인가


사진 찍히기 싫다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면 이런 사진이 나온다


플래쉬를 잘못 터뜨리면 얼굴이 허연 몽달귀신만 남는다. 자세히 보면 배경이 남산타워라는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역광에서는 얼굴이 시커멓게 나왔다


역광에서 찍으면 안 된다니까 자꾸 찍고 있다


노출 조정은 아무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보다


삼각대도 없이 야경에 도전하는 만용이 종종 튀어 나온다


밤에 플래시도 없이 찍으면 흔들리거나 어둡거나 둘 중 하나




 "잘 찍지도 못하 사진, 왜 계속 찍는 거야?"


 아내가 물다. 딱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서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도 참말 궁금하다. 나갈 때마다 카메라를 손에 들었건만 사진 실력은 왜 늘지 않까. 아내가 별 수고 들이지 않고 대충 찍은 휴대폰 사진들이, 내가 구도를 계산하고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 링을 돌리고 한 스탑노출까지 가감해가며 정성 들여 찍은 필름 사진들보다  나을 때가 많았다. 할 말이 없을 수밖에.


 형편없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클래식 필름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사진찍어 달라고 부탁할 때가 있다. 본인들의 스마트폰을 내 손에 쥐어주며 사진 한 장 예쁘게 찍어 주세요, 라면서. 왠지 나를 신뢰하는 눈빛이라 뿌리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하나 둘 셋, 오케이, 한 장만 더 찍을게요, 라고 외치며 사진을 몇 컷 면서 미안해다. 사실 저 사진 되게 못 찍어요. 카메라를 메고 다니니 사진 좀 찍는 사람일 거라고 오해하신 것 같은데 이따 제가 찍어드린 사진 보면 후회하실 거예요. 괜히 쟤한테 찍어 달라 그랬다고. 사진도 못 찍는 놈이 왜 저런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거냐고 그러실 텐데. 욕을 먹을까 봐 스마트폰을 돌려드린 뒤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황급히 자리를 뜨게 된다.


 그래도 몇 년을 틈날 때마다 계속 찍다 보니 아주 못 봐줄 사진을 찍지는 않게 됐다. 렇게 착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지난 3년간 많이도 찍고 찍고 또 찍었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멋진 사진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 사진집을 사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전문적이진 않지만 이런저런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한 강의들을 읽어가면서 '괜찮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정도면 아마추어 취미 사진가로서는 할 만큼 다고 스스로 만족했다. 물론, 아내는 여전히 내 사진을 보고 딱히 칭찬을 해 준 적 없다.


 사진에 자신이 없으면 디지털카메라를 어야 한다. 기계가 지시하는 대로 셔터를 누르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무수히 찍고 지우고 반복 수 있는 편리함이 있으니까. 즘엔 얼마나 기술이 좋은가. 원하는 곳으로 눈동자만 돌려도 알아서 초점을 맞춰주고 알아서 찍어주기까지 한다. 이런 시대에 괜한 고집을 피운답시고 도 비싸진 필름을 끼워 넣고, 찍을 때마다 셔터 레버를 당기고, 중하게 고민한 끝에 셔터를 누르고, 컷을 다 쓴 필름다시 되감아서 뺀 후, 사진관으로 가서 이나 스캔 맡겨야만 하는, 사용하기도 불편하고 한참이나 기다려야 결과물을  수 있는 필름 카메라를 굳이 몇 년째 쓰고 있다. 하필이면 왜 필름 카메라. 찰나의 순간을 붙들어서 영원으로 남겨두고 싶어서라는 흔한 변명은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대답인데.


 필름카메라를 쓸 땐 보통 1롤에 들어있는 36컷을 모두 찍을 때까지, 그리고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기까지 기다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장 결과물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번 찍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으면서 사진을 찍는 시간 그 자체에 집중야 하기도 한다. 디지털의 즉시성과 편리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롯이 사진을 찍는 재미와 진지함, 그리고 결과에 대한 두근거는 기다림만이 남아 있다. 오직 빨리빨리가 미덕인 세상에서 사진을 찍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만은 나의 호흡대로 느리게 가져갈 수 있어서 음에 든다. 가끔은 세상이 아닌 나의 속도로 살고 싶을 때 필름카메라에 손이 가게 된다.


 또한 필름이라는 손에 쥘 수 있'현물성'을 지닌 존재가 남는다는 것도 매력. 내게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파일이라는 건 언제든 휘발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내포한다. PC 하드로는 부족해서 외장하드나 usb 디스크에 복사를 하고, 두어 개 클라우드에까지 백업에 백업을 거듭했음에도 왠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현상이 끝난 필름 한 뭉치를 서랍장에 넣어 두고, 인화를 한 사진들을 앨범 한 페이지꽂아 두고서 바라보고 있면 어찌나 마음이 놓이는지. 그제야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을 라 내어 온전히 내 소유로 만든 느낌이 든다. 에 보이고 손에 잡혀야만 믿음이 가는 영락없는 옛날 사람의 모습이.


 오래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어쩌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한 , 그러니까 요즘은 소위 '힙함'이라고 표현는, 그런 걸 드러내싶어 하는 '얄팍한 과시욕' 때문 아닐 해서 민망 때도 있. 날로그한 물건들이 다시금 유행하게 된 즘 시대남없이 모두 생각 없이 휩쓸려 따라가는  아닌가 하고. 저마다 SNS에 필름으로 찍었거나 억지로 필름 느낌이 나게 어플로 보정한 감성 사진들을 자랑하고들 다. 어쩌면 짧을지도 모를 몰취향의 취향라는 유행이 끝나고 나면 시들해진 필름카메라들은 다시 장롱 구석 어딘가에 처박히게 되려나.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퀸을 듣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듣고 있 모르는 것처럼.


 하지만 필름카메라를 다시 손에 쥐었을 때의 다짐만은 잊지 기로 한다. 버지가 쓰시던 니콘 FG-20.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가 구매하셨던 카메라.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탄생이라는 기쁨을 어떻게라도 기록하고 간직하고 싶으셔서 그 해에 새로 나온 신상 카메라를 달려가서 사셨던 거겠지. 나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금의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다는 것. 이런 게 남편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인가 보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아니다. 일상의 소박한 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 담아두고 싶다. 그렇게 다짐하고서, 사진이라는 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되는대로 막 찍었었다. 그새 카메라는 하나 둘 시나브로 늘다. 어머니가 젊었을 적 쓰시던 미놀타도 들이고, 부모님께서 90년대에 쓰시던 삼성 자동카메라도 받아오고, 심지어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셨다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캐논 RF 카메라도 고쳐서 쓰고 있다.


 아직도 좋은 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은 모르겠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오답의 행렬 속을 헤매고 있지만, 일단은 계속해서 찍어 볼 심산이다. 그렇게 찍다 보면 언젠가는 아내에게 기쁜 표정으로, 내가 결국에는 찾아낸 정답 같은 사진을 자랑하듯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 사진 한 번 봐봐. 되게 잘 찍었지?"







※ 도움주신 카메라분들

Nikon FG-20

Minolta X-700

Canon QL17 g3

Samsung af slim zoom 70s

Rollei XF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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