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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17. 2020

잔치국수 따위 먹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잔치국수도 맛있지만, 맨 중의 맨은 휴 잭맨, 면 중의 면은 라면 아니겠는가?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1월, 4월





 어렸을  일요일이면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으로 치말이 국수를 먹었다. 실은 국수라부르기엔 애매한, 김치를 넣 삶아서 자작게 끓인 국물에 밥이나 면을 말아먹었던 음식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시느라 평일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날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나 돼야 비로소 아빠, 엄마, 나, 동생 이렇게 네 명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 수 있었다. 전날 밤 졸음을 참아가며 <토요명화>를 보고 늦게 잤거나 아침 일찍 <디즈니 만화동산>에 신나 하다가 도로 까무룩 잠들었다 깼으니 다들 비몽사몽한 일요일 오전. 그런 정신으로 밥을 안치기엔 늦었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식이 바로 국수였다. 멸치를 한 줌 넣어 국물을 우려내고,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팔팔 끓이다가, 미리 끓여놓은 국수 소면과 계란물을 붓고, 이내 진득해진 국물 위에 마지막으로 파를 송송 썰어서 얹으면 끝. 그렇게 일요일 늦은 첫 끼는 늘 엄마가 눈 깜짝할 새 만드신 국수를 먹었다.


 가족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철없이 어린 마음에 괜히 밥투정만 부리곤 했다. 꼬마 아이 때는 멸치 따위는 끔찍이도 싫어하니까 그럴 수도 있 법.


 "엄마, 국물에 맬치 좀 안 넣으믄 안되나? 이거 커다란 거 씹히는 느무 싫타. 입천장에 까시가 막 찌르는 것 같."


 "머라카노. 이런 걸 묵어야 몸에 좋지. 꼭꼭 씹어서 무 봐라. 을매나 맛나는데. 일부러 건져서 안 버리꼬 넣어 놨구만은."


 엄마는 육수를 우릴 때 쓰는 멸치를 건져내지 않으다. 몸에 좋은 거니까 버리기 아깝다고, 이런 걸 먹어야 뼈에도 좋고 몸도 튼튼해진다고 하셨다. 어릴 땐 그걸 먹는 게 참 싫다. 한참을 끓여서 흐물흐물해진 멸치 몸뚱아리를 씹으면 아직도 단단하게 남아있던 가시가 입 천장을 찔러댔다. 이미 국물에다 자신의 모든 걸 건네 줘 버렸는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멸치 몸뚱아리. 그걸 씹어서 삼키는 건 고역이었다. 3살 터울 동생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식사를 마칠 때 즈음엔 커다란 냄비 바닥에 젓가락의 간택을 받지 못한 멸치의 잔해들만 수북하게 남았다.  


 대학을 다니느라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 일요일에 국수를 먹지 않게 됐다. 식사 따위 거른 채 늦게까지 자거나, 귀찮으니 대충 라면이나 끓여서 모니터 화면을 벗삼아 한 끼를 때웠다. 혼자서 늦은 아침밥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 엄마가 해 주시던 국수가 생각났다. 햇살마저도 게으르게 기어 들어오는 일요일 오전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후루룩 소릴 내며 면을 먹어야 제맛인데. 벌겋고 칼칼한 국물 한 모금 들이키며 "으어, 억쑤로 시원하다."는 아빠의 추임새도 곁들여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국수 냄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국수를 먹지 않으니 아무래도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게 이건 제대로 된 일요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동네 분식집에 들어가서 잔치국수나 김치우동 따위를 시켜봤다. 하지만 집에서 먹던 김치죽 국수의 맛이 날 리가 없었다. 멸치 건더기 따위 하나도 걸거치지 않멀끔 국물을 마시고 있으니 고향집 더 그리워졌다. 세상에, 국수에 들어있는 멸치 쪼가리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밥상머리에서 투정 따위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일요일 점심때마다 아련한 그리움을 좇으며 국수를 열심히 먹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동안 국수를 입에도 대지 않 날이 오게 됐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구공익근무를 시작했다. 주소지를 옮겨 놔서 고향이 아니라 서울에서 군대를, 아니, 그러니까 군대를 '' 게 아니라 '다녔다'. 농구를 하다가 다쳐서 현역으로 오지 말라는 4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병명은 폐 기흉. 그게 무슨 병이냐고 물어보는 이들에게는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서 짤막하게 대답하곤 했다.


 "에서 바람이 빠져나와서 숨을 못 쉬는 거예요."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던 내 곁에서 의사의 설명을 들으시고 엄마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씀을 하셨더랬다.


 "네가 실없이 실실 잘 웃 대이드만 진짜로 허파에 바람이 들어삤네. 는 평생 그런 병이 있는지도 몰랐다카이." 


 "아이 참. 엄마, 나는 바람이 든 게 아니라 폐에서 바람이 빠져나와서 숨을 못 쉬었던 거니까 그 반대라고요."


 "머라카노. 그게 그지 뭐."


  병 때문에, 혹은 덕분에, 강원도에서 4주간의 짧은 훈련을 마치고 주소지 인근 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하게 됐다. 거기선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일을 맡았다. 새벽 6시 조금 전에 나와서 구건물 지하의 체력단련실 등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청소뿐만 아니라 물품 수급도 하고, 운동기구도 닦고 조이고, 수건과 운동복 빨래도 하고, 셔터문도 내리고 올리고, 이것저것 잡일들까지. 매일같이 시간 맞춰 새벽출근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만큼 일찍 퇴근 시각을 맞이할 수 있서 좋았다. 딱히 힘들거나 괴롭거나 급박할 것 없는 심상한 업무, 심상한 사람들, 심상한 시간이었다.


 딱 하나 문제는 출근 후 청소를 마치고 먹는 첫 끼니였다. 같이 근무했던 지하실의 기능직 공무원들, 그리고 거리 청소를 마치고 온 공공근로 아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데 이땐 너무 이른 시간이라 구내식당 제대로 된 밥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란 지단은 고사하고 건더기라고는 파 쪼가리 몇 개뿐인 여멀건한 잔치국수나, 흰쌀 맨밥에 간장과 김 몇 장. 그리고 김치를 먹으라고 내주는 거 아닌가. 영화 <황해>의 하정우처럼 밥에다 김만 얹어도 맛깔나게 먹을 자신없던지라, 두 메뉴 중에서 늘 국수를 선택해서 먹다. 뜨끈한 국물과 훌훌 들이켜지는 면발이 아침 식사로는 썩 나쁘지 않다.


 그러나 2년여를 매일 아침마다 국수를 먹으니 물리지 않을 수가 있나. 나중에는 하루 종일 입에서 밀가루 냄새가 풍겨 나오는 듯했다. 물을 마셔도 왠지 멸치 국물 맛이 입 안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점점 국수가 지겨워졌는데, 입에 대기도 싫어졌던 이유가 그뿐만은 아니었다.


 구청 지하실에 나름의 독립된 사회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그 축을 이루는 단은 기능직 공무원(정확히는 뭔지 모르겠는데 9급이 아니라 소위 10급이라 부르던, 왠지 학교의 주사 영감님 같은 느낌의)과, 환경미화부와(는 조금 다르지만) 같은 일을 하는 공공근로 아재들이었다. 나 같은 공익들이나 안내 데스크의 파견직, 계약직 누님들은 딱히 세력이라 할 것도 없으니 제외하 나면 기능직과 공공근로, 이렇게 두 일파가 존재했던 .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기능직과 공공근로 사이엔 갈등이 상존했다. 소한 것에서부터 큰 다툼까지 부딪치는 일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깊이 남은 사건이 하나 있다. 아침 업무가 끝나면 다 같이 체력단련실에서 샤워를 하는 게 일과였다. 그런데 기능직들은 공공근로자들과 같이 씻지를 않는 거다. 공공근로자들이 씻고 있는데 샤워실 밖에서 멀뚱멀뚱 쳐다 보고만 있다. 어차피 얼른 씻어야  거 왜 같이 씻지 않으시냐고 여쭤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런 급 낮은 인간하고는 도저히 같이 씻을 수 없."


 렇다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홀딱 벗은 채 같이 씻 나는 뭐되는 거지.


 지상층에서 근무하는 9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들이 보기에는 기능직이나 공공근로나 별 차이 없는 같은 사람들로 보을 게다. 그런데 그 아래 지하층에선 누가 더 위네 누가 더 아래네 이러면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해 위로를 주고 받고, 한데 모여 처우 개선을 요구하거나, 동일 업무 동일 임금을 외치거나 하면서 단합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러질 않. 이 좁은 세계에서마저도 너와 나는 다르다며 구분 짓고, 내가 너보다 조금 더 높은 에 있으니까 갑질을 해야 하고, 러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바닥에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악다구니처럼 물고 뜯고 하는 모양새가, 어째 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대답을 들은 후 샤워가 끝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그동안 몰랐는데 기능직과 공공근로자들 각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따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럼 어느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나. 나는 어떤 급의 인간인 걸까.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고민에 식판을 든 채 발걸음이 머뭇거려졌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희한한 장면을 맞닥뜨리니, 일종의 카프카적인 혼란에 빠져서 아득해졌다. 버지, 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날부터 구청 식당의 잔치국수를 먹을 때마다 왠지 소화가 잘 안 됐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라면이나 짜장면을 먹으면 먹었지, 국수 따위는 이제 두 번 다시는 안 먹으련다. 고래 간 갈등에 등이 터진 새우는 결국 입맛이 바뀌고야 만 것. 그렇게 국수와의 연은 끊어지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시나브로 국수를 다시 먹게 됐다.


 아내가 아직 여자 친구이던 무렵, 종종 아내가 사는 집에 들러 저녁이나 야식을 얻어먹고 왔다. 그 집에서는 야식으로 종종 국수를 먹었다. 아내의 고모님이나 할머께서 간단하게 말아 주시따뜻한 잔치국수, 시원한 김치말이 물국수나 새콤한 비빔국수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너 혹시 국수 좋아하니?"


 "아... 네. 좋아합니다. 주시면 다 잘 먹죠. 아하하하."


 국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됐지만 여자 친구네 집에서 나릉 위해 일부러 해 주신다는데 어찌 거절할 수가 있나. 음식 가리는 까다로운 남자라는 소릴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눈 질끈 감고 몇 번만 먹으면 되겠지, 하고 국수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후루룩 하고 입으로 빨아들이는데 이것 참 이상타. 이상하게 너무 맛있다. 이 집 사람들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그런 건가. 나는 분명 국수를 싫어하는데 여기서는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맛도 맛이거니와 가족들이 밥상에 함께 둘러앉은 모습을 오랜만에 접해서 국수 맛이 더 와 닿았던 게 아닐까 싶다. 혼자 산 지 10여 년이 되어가니 누군가와 함께하는 이 사무치게 그리워졌. 여자 친구네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왠지 부러다. 같이 밥을 먹고, 거실에서 같이 TV를 보고, 각자 방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야심한 밤 출출함을 달래려고 주방 식탁에 모여 같이 야식도 먹고 하는 함께 사는 가족의 삶이.


 그 집 식탁에 앉아서 나도 같이 국수를 먹고 있으니 왠지 어렸을 적 일요일 늦은 오전의 그때로 되돌아간 듯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떠 보면, 옆에선 욕심 많은 동생 녀석이 볼이 터질 만큼 입 안 가득 면을 욱여넣고, 앞에선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시며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시고, 엄마는 많이 먹으라면서 아직 비우지도 않은 내 그릇에 국자로 건더기를 연신 퍼 주고 계실 것만 같다. 그런 와중에 나는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엉터리 x자 젓가락질로 멸치 꽁다리를 골라내고 있고. 그때의 게으르게 들어오던 햇살, 맨손으로 집으면 너무 뜨겁던 커다란 스테인리스 냄비,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던 국그릇, 달그락거리던 수저 소리들까지. 사진이라도 찍어 놓은 듯 그때 그 장면이 머릿속에 선연하게 떠올라서 코 끝이 찡해졌다. 그나저나 남의 집 와서 맛있는 거 얻어먹는 중이면서 왜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 양 속으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그렇게 한 번 두 번 국수를 같이 먹다 보니 우리 둘은 마침내 남들에게도 '잔치국수를 먹이는' 날을 맞게 됐다. 결혼이라는 잔치를 벌이는 데 성공한 것. 결혼한 후에도 아내는 종종 국수를 말아준다. 자기 할머니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제법 그럴싸한 맛이 나는 국수다. 이제는 도 국수가 다시 좋아졌다. 여보, 오늘 뜨끈하게 국수한 그릇 할. 잘 익어서 시큼한 김치 많이 썰어 넣어서. 면은 내가 삶을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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