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삼청동 골목을 걷다가 덕성여고 옆을 지나가게 됐다.담장 너머로 운동장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농구대가 보였다.여고 운동장의 농구대라는 사물의 존재가 왠지 낯설다.말도 안 되는비유를 억지스럽게 갖다 붙이자면, 이건 마치 중국집에서 파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같은 느낌이다.
"여자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땀 흘리면서 농구를 할 리 없잖아?"
농구대를 흘끗쳐다 보면서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말을 들은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렇잖아도 큰 눈이 더 커지니까 조금 무서웠다.
"그게 무슨성차별적 발언이야. 여자아이들도 농구 많이 하는데?나는여고 나왔는데 그 학교엔농구부도 있었어."
"아이쿠, 내 생각이 짧았네. 사과하겠습니다."
아내의 뼈 있는 대답을 듣고얼른 사과했다. 빠르면 좋은 것들이 있는데, 특히 퇴근 시각과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은 법이다.
굳이 변명하자면,내가 하려던 말은 여자아이들에겐 운동장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었다. 그네들이 뙤약볕 아래 운동장에서 시커멓게 살을 태워가며 땀흘리고 헉헉대는 모습이 상상이 안돼서였다.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장면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는데, 그것 참 이상하다. 미디어에서 자주 접했던 여자 운동선수들이 배구선수 김연경, 피겨선수 김연아,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 같은 얼굴이 희고 고운 실내 스포츠인들뿐이라 그런 걸까.
혹은 어느 페미니스트 교사가 말했던 것처럼 남자아이들이 운동장을 전유하는 데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익숙해져서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으레 남자들은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여자들은 운동장 스탠드에 얌전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는 성차별적 인식에 길들여져서, 까맣게 탄 얼굴로 땀흘리며 농구하는 여고생의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늘 그렇게 봐왔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교육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텍스트로는 어찌저찌 서술이 가능하나 머리로는 '농구부 여고생'이라는 개념을 아예 상상조차 해 내질 못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체육 시간엔 늘 그늘진 곳에 앉아서 한가롭게 노닥거리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내리쬐는 땡볕 아래 땀 흘리면서축구나 농구를 하는 걸 무척 싫어했다. 운동하는 친구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혀를 쯧쯧 하고 차곤 했다. 애들도 아니고 뭣하러 공놀이 따위에 힘을 들이는 거야. 마치 영화 <YMCA 야구단>에 나오던 개화기 때 조선의 선비 같은 모습이었다. 공을 치고 달리는 힘든 일 따위는 머슴에게 시키지, 뭣하러 양반이 천박하게 뛰어다닌단 말이오. 엣헴. 땀흘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한심해했다. 저런 거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매점에서 사 온 간식도 먹고 나란히 모여 앉아 쿵쿵따도 하고, 운동 말고도 할 수 있는 재미난 것들이 많다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여느 남고생 따위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듯 나를 비롯한 몇몇의 동지들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운동을 멀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운동하는 친구들을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하는이른바 '비운동권' 소장파들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 추억담을 들은 아내가 핀잔하듯 말했다.
"에이, 남자가 뭐 그러냐?"
"이것 봐라. 너도그거 성차별적 발언이야.얼른 사과해."
아내도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너도 운동을 싫어하는 남자를 본 적 없었구나. 혹은 그런 존재를 생각하지 못했구나.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까만 얼굴로 운동장에서 뛰어 다니는 여고생,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시집을 읽는 얼굴이 하얀 남고생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자는 이래야 돼, 남자는 이래야 돼 같은 말 같잖은 말은 아무도 꺼내지 않는 사회. 그런 말을 아예 상상조차 하지 않는 시대. 물론 그런 날이 빨리 오게 하려면 우리부터 부단히 노력해야할 거다. 그리고, 쓸 데 없는 말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나는 여전히 운동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