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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pr 13. 2021

세탁기가 얼었는데 어떡하죠

무척 추웠던 날, 부엌 창에 성에가 허옇게 내려앉았다.
세탁기야, 감기 걸리지 말고 건강하려무나.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1년 1월





 코로나 19라는 역병이 퍼진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때문인지 혹은 덕분인지, 5일 근무 중 이틀은 재택근무를 하고 주말엔 집에 있는다. 일주일에 무려 나흘이나 집 안에 있게 된 셈이다. 요즘엔 출퇴근도 대중교통으로 하지 않는다. 돌도 안 된 아이에게 나쁜 균이라도 옮을라 함부로 전철이나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운전하는 걸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나갔다가 들어온다. 어딘가로 나가 바깥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날도 손에 꼽을 만큼 줄었다. 걱정도 과하면 병이라지만 더 무서운 병을 피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구내식당을, 집에서는 직접 밥을 해 먹거나 배달 음식만 찾았다.


 그러니 지난겨울엔 바깥 날씨가 어떤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집, 회사, 주차장만 오가며 마치 온실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 같았으니까. 따뜻한지 추운지 혹은 버틸 만한 추위인지는 스마트폰 날씨 어플에 떠 있는 온도계 숫자를 보고 추측할 뿐이었다. 집에 있는 날엔 추측의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가스불을 켰을 때 부엌 창에 허옇게 성에가 끼는 날엔 오늘이 아주 추운 날씨구나 싶었다. 그런 날에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여니 아주 한겨울의 공기가 어찌나 차가운지. 바깥에서 안을 탐하며 불어닥치는 싸늘한 바람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반팔 옷에서 삐져나온 팔다리엔 닭살이 금세 돋아났다. 아무리 따뜻한 겨울이었다지만 그렇게 종종 날카롭게 추운 날들이 있었다.


 창문에 성에가 두텁게 나려앉은 날엔 왠지 걱정스러웠다. 부엌에 붙어있는 다용도실에 놓아둔 세탁기는 무탈하려나, 하는 걱정이었다. 추운 날씨에 혹여나 세탁기가 얼어붙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빨래를 못하면 내일모레는 뭘 입고 나가야 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날이 따뜻할 때 빨래를 미리 해 둘 걸. 언제부터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되었나 따져 봤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하숙집을 떠나 홀로 자취방에 살게 되면서부터 시작한 걱정이었다. 그때 세탁기가 언다는 일을 난생처음 경험했으니까. 이후로 거의 10여 년 동안 겨울만 되면 자나 깨나 세탁기 걱정에 빠졌다. 매년 찾아드는, 마치 채무 변제 독촉처불청객스러운 걱정이라 할 수 있다.


 갓 취업에 성공하고서 채 한 달도 안 됐을 때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 이삿짐을 꾸렸다. 당시에 살고 있던 곳은 신림 9동 고시촌. 지금은 '대학동'으로 그럴듯하게 이름이 바뀐 동네였다. 고시생들에게 외출의 유혹을 원천 차단하고자 했는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는 버스를 타고서도 10여분을 더 달려가야 했다. 출근 시간 버스 정류장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줄이 늘어섰다. 마침내 내 차례까지 와서 간신히 올라탄 버스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나라는 존재가 사람인지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인지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매일 아침마다 좁은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살을 부대끼고 인상을 쓰다 보니 사람에 대한 적의가 불타올랐다. 이러다가 큰일 나기 전에 이 동네를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곧바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간 곳은 2호선 서울대입구역 근처였다. 걸어서 5분이면 지하철을 탈 수 있어서 고른 월셋집이었다. 회사 근처에 집을 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 막 만든 급여 통장의 잔고가 허락지 않았다. 회사는 강남에서도 집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타워팰리스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목표는 일단 지하철역에 가까울 것, 보증금이 비싸지 않을 것, 그리고 화장실이 딸려있는 것이었다. 부동산중개소 사장님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서너 군데만 둘러본 뒤 이사 갈 집을 바로 결정했다.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봤던 집들 중 역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었다. 뭐가 그리도 바삐 예전 집과 이별하고 싶었던 걸까. 지나친 서두름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다.


 이사를 하고 짜장면으로 배를 채운 뒤 피곤한 몸을 자리에 뉘었다. 새 집에서의 첫째 날 밤이었다.


 "아아하앙."


 야밤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고. 소리가 새어 나오는 벽에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쫑긋 세웠다. 아, 좋아. 두 번째 소리를 듣고서야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옆집 커플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였다. 재미난 곳에 이사를 왔구나 싶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거친 신음소리가 끝난 지 불과 30분도 안 됐는데 아아아잉,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혈기왕성한 양반들인지 하룻밤에도 몇 번이나 사랑의 소음이 계속됐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같이 그러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옆집 남자는 대체 뭘 먹는 거지. 어느 날엔 옆집 여자가 외치는 대사 하나하나가 다 들렸다. 아악, 좋아, 거기야 바로 거기. 대체 '그곳'은 어디일까 궁금해하며 밤새 뜬 눈으로 지새웠다. 만 힘든 게 아니었던지 그 집 문엔 다른 집에서 붙인 경고의 쪽지가 자주 보였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비단 옆집뿐만은 아니었다. 앞집에서는 매일 새벽 6시마다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캔트 노바디 홀드 어스 다운. 날 멈추려 하지 마." 투애니원의 노래였다. 아침잠이 얼마나 은 양반인지 노랫소리는 10분이고 20분이고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대체 왜 알람을 안 끄는 걸까. 게 정말 안 들리는 걸까. 이른 아침마다 같은 멜로디에 괴로워하며 베개를 쥐어잡아 귀를 싸맸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 화가 많아졌는지 죄 없는 투애니원에 대한 적의도 생겨났다. 혹시 저 집에서는 간밤의 일에 대한 복수를 하느라고 일부러 알람을 끄지 않는 걸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너희의 전쟁 같은 사랑 소리에 나는 새벽 알람 소리로 맞서겠다는. 왠지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된 기분이었다.


 "이거 뭐야? 벽이 왜 이래!"


 어느 날엔 화장실에서부터 근처의 벽이 모두 시커멓게 변한 걸 발견했다. 자세히 뜯어보니 울에 피는 꽃인 양 웬 곰팡이가 그렇게나 피었는지. 어쩐지 이사 올 때 주인집 아주머니가 환기를 자주 하라더니만. 여기는 북향집이라서 볕이 잘 안 들고 습할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찬바람이 슬슬 불어오기 시작한 때라 주의사항을 잊고 창문을 닫아놓은 채 지냈더니 참사 벌어진 것이렸다. 아무리 벽지를 닦아내도 시커멓게 물든 끼는 사라지지 않았다. 콜록콜록. 간밤에는 기침을 하니 손수건 밭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폐병환자가 되는 꿈에서였다. 꿈이 현실이 될까 봐 샤워를 하고 나오면 아무리 추워도 몇 분 간은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를 했다. 곰팡이 가루를 들이마시면서 살 수는 없었다.


 "이건 또 뭐야?"


 한창 추웠던 겨울이었다. 분명 세탁기를 돌려놓고 종료 알람 소리를 들었는데 건조한 사막에라도 온 듯 빨랫감에 물기가 하나도 묻어있질 않다. 세탁기 통에 손을 넣어 만져보니 빨래를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탁기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참을 탈탈거리면서 돌았는데 세탁기에 연결된 수도 호스에서 물이 나오지 않다. 워낙 추운 날씨에 호스가 꽁꽁 얼어붙은 탓이었다. 큰일 났네. 옆집과 앞집의 시끄러운 소리야 귀마개를 하면 되고, 화장실과 벽의 곰팡이는 환기를 자주 하면 되니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세탁기가 얼어붙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점잖아 보이는 옷이 몇 벌 되지도 않는데 빨래를 못하면 당장 내일모레 출근할 때 입을 옷이 없었다. 신입사원 주제에 빨래 핑계를 대며 후드티에 츄리닝을 입고 출근할 순 없잖나. 그렇다고 매번 세탁소에다 옷을 맡길 수도 없고.


 세탁기를 '살려야 한다'. 어떻게든 세탁기를 소생시키려고 야밤의 작업에 들어갔다. 전원도 들어오고 통도 돌아가는 걸 보니 다른 건 딱히 문제없고 얼어붙은 수도 호스만 녹이면 될 것 같았다. 스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봤다. 으로 탁탁 쳐 보기도 했다. 어림도 없었다. 냉동실에 한참이나 갇혀있던 폴라포 아이스크림처럼 딱딱한 호스였다. 손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헤어드라이기를 동원했다. 뜨거운 바람을 한참이나 쐬었더니 얼음이 녹아서 조금씩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가능성이 보였다. 한 손엔 드라이기를 한 손으로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이번에는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서너 번 반복했더니 호스에서 녹은 물과 얼음 부스러기들이 후드득 흘러나왔다. 이제 됐다. 환호성을 지르며 세탁기를 돌렸더니 이제사 빨래가 된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위층 집주인 아주머니께 달려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동극이냐며 따졌더니,


 "아이고, 총각. 잠깐만 기다려봐."


 라며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서 내게 건네줬다. 요맘때 즈음 올 것이 왔다는 표정. 놀라지도 않는 걸 보니 이 집에서는 겨울마다 겪는 흔한 일인가 보다. 아주머니로부터 대단한 선물이라도 되는 양 건네받은 건 털실로 짠 '세탁기용 옷'이었다. 겨울에 이걸 덮어두면 세탁기가 얼지 않을 거란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돌아와 세탁기에 털 스웨터를 입혔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사물에 옷을 입히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흘 후 세탁기를 돌려봤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 없는지 털옷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꽁꽁 언 수도 호스 때문에 세탁기는 다시금 먹통이었다. 다음날 아침, 이게 대체 뭐냐고 또다시 따졌더니,


 "아이고, 총각. 한 번만 더 잠깐만 기다려봐."


 아주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마침내 정답을 찾은 듯, 그냥 내가 직접 빨래를 해 줄 테니 필요할 때마다 빨랫감을 가져오란다. 그해 겨울 두 번 세 번, 마치 빨래방처럼 주인집에다 래를 맡겼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 늦게 퇴근하는 날엔 주인집 벨을 누르기가 꺼려지고 주말엔 주인집에 사람이 없기도 하고 심지어 다 끝난 빨래는 종종 양말이 한 짝씩 행방불명돼서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갈 곳 없는 빨랫감들이 내 방 한구석에 산처럼 쌓이기 일쑤. 넘쳐나는 빨래통을 보고 있자니 주인집 아주머니에 대한 적의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직장생활 6개월 차가 되니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화가 나던 때였다. 그해 겨울이 끝나자마자 성난 황소걸음으로 위층 주인집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고, 총각. 이번에는 또 왜..."


 "아주머니. 저 이사 가려구요. 바로 방 뺄게요!"


 2년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다시 이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여러 집을 꼼꼼하게 살피고 최종 후보지에는 낮과 밤, 두 번씩 들러서 시간대별로 집을 확인했다. 스마트폰 나침반 어플을 켜서 어느 방향의 집인지, 냉수와 온수는 잘 나오는지, 샤워기와 변기의 수압은 어떠한지, 난방과 냉방은 문제없는지, 곰팡이나 결로가 생겨있진 않은지, 위층과 옆집이 시끄럽진 않은지 눈에 불을 켜고 살폈다. 부동산중개소에서 등기부등본을 떼서 집주인의 융자 상황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주민센터에 가서 확정일자라는 것도 받았다. 불과 1년 사이에 '살 만한 집'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걸 배웠더랬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또다시 그럴 순 없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지. 최종 낙점지는 볕이 잘 드는 남향의 신축 빌라였다. 그곳에서 3년을 살았는데 세탁기는 한 번도 얼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겨울보다 여름이 더 좋아졌다. 더운 날엔 세탁기가 어는 일은 없으니까. 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살아가면서, 아니, 어쩌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 살든지 간에 아주 추운 날엔 조건반사적 행동처럼 세탁기가 잘 있나 확인하게 된다. 지금은, 지은 지 10년도 안 된 거의 새 것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게다.


 이제는 옆집이나 앞집에서 시끄러운 소리도 나지 않고, 곰팡이도 결로도 없는 깨끗한 집에, 아무리 추운 날에도 수도관이 어는 일 따위 없이 세탁기가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 혹여나 집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실에 인터폰 한 번이면 금방 해결된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낡은 다세대주택에 살 때 겪었던 사건 사고 따위 벌어질 일이 없다. 아파트 만만세다.


 그런데 분명 생활은 편해졌지만, 째 이야깃거리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집에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파트의 사람들은 사는 곳의 높낮이만 다를 뿐 모두가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구조에, 똑같은 시설을 누리면서 산다. 가격대가 얼추 정해져 있는 집이니 다들 비슷한 소득 수준에, 비슷한 가족 수에, 비슷한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다들 같은 색깔의 삶을 살다 보니 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어떨 땐 여기가 자유인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동일한 줄무늬의 죄수복을 입은 포로들이 한데 모여 사는 콘크리트 수용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만의 개성과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회. 길을 걷다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다들 똑같이 생긴 에서 똑같은 모양새로 사는데도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이 없는 걸까.


 그렇다고 세탁기가 얼어붙 이야깃거리가 있던, 그때 그런 으로 되돌아가 살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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