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오전에는 부엌 쪽에서, 오후에는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주말에 늦은 점심을 먹고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다 보면 오후 서너 시쯤 눈이 부셔서 아직 볕이 들지 않는 부엌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너 그러다 소 된다"며 게으름뱅이 짓 좀 그만 하라고 야단 아닌 야단을 친다.
하나 둘 모은 화분들의 잎새들은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같은 날, 같은 크기일 때 사 왔는데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자라나 있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면 어떤 녀석은 잎에 물방울이 그대로 맺혀있고 다른 어떤 녀석은 도르륵 물방울이 흘러내리는데 왜 다른지는 모르겠다.
화장실 전등은 하얀색보다는 노란색 불일 때 마음이 편안하다. 수명이 한참 남은 멀쩡한 전구를 왜 갈아야 하나면서 궁시렁거렸는데 역시 아내 말을 들어서 틀린 게 없더라. 거울을 봤을 때 왠지 얼굴도 더 고와 보이고.
여름이라 활짝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면 하얀 커튼이 흩날리고, 시원한 찬물에 샤워를 하고서 아직 젖어있는 머리칼 역시 선풍기 앞에서 흩날리는 순간은 마치 파스텔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나 있잖아, 에어컨보다는 선풍기가 좋더라"며 아이처럼 선풍기 앞에 앉아 아아아ㅡ 거리는 소리를 내 본다.
겨울에는 분명 보일러를 켜 놔서 집이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소파 위에 담요를 펼쳐 쏙 하고 들어가야 된다. 소라게가 소라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듯 어딘가로 들어가 있자면 왠지 더 따뜻한 느낌이다. 담요와 혼연일체로 돌돌 말려있는 나를 보고서 아내가 "너 완전 김밥 같다"며 놀려댄다.
그림이며 사진 액자들과 예쁜 전등불과 색깔이 고운 유리병 같은 소품들은 집 안 여기저기 놓여있다.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소풍날 보물찾기를 하는 것도 같다. 아내 몰래 비상금이라든지 비밀을 고백하는 쪽지를 써서 여기다가 숨겨두면 되겠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 발견하게 되면 재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