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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Jul 29. 2020

서울에서 10억 원짜리 아파트에 산다

주간(週間) 필름 사진첩 마흔 번째

창 밖을 바라보면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도 모두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4월



고작 내 한 몸 누일 곳을 찾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라니

Samsung af slim zoom 70s

Samsung zoom 35-70mm auto macro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5월





"나는 집에서 놀면서도 연봉 1억 원씩 벌어다 줬으니까 일 하라는 말은 하지 마."


아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후 5년 동안 3번의 이사를 하면서, 2억 원의 빌라 전셋집과 5억 원을 주고 산 아파트를 거쳐 이제는 비록 '호가'에 불과하지만 10억 원 남짓한 아파트에 살게 됐으니. 5년 동안 5억 원을 벌어다 준 셈이니 얼추 연봉 1억 원의 능력자가 맞다. 뻐길 만도 하다. 그동안의 모든 이사는 아내가 결정했기에 자산 증식에 딱히 기여한 바 없는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개미처럼 땀흘려종잣돈 마련하고 은행 대출은 내가 받아 왔으니까 정확하게 따져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서도.


10억 원은 실수령액 연봉 5천, 그러니까 세전 6천~7천만 원 정도 버는 직장인이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그저 숨만 쉬고 살면서도 꼬박 20년을 모아야만 하는 돈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정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대출이 끼어 있으므로 남의 것과 나의 것이 한데 뒤섞여있는 곳의 거실서 집을 하나하나 뜯어 살펴다. 이 집에서 내가 쓰는 공간이라고는 퇴근 후에 붙박이장처럼 누워 있는 소파 한, 밥 먹을 때 앉아있는 식탁과 의자,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만 마주하게 되는 안방 침대뿐이다. 모두 더해봤자 고작 몇 평뿐인 이런 걸 누리려고 1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고 평생 그 빚을 갚아 나가면서 살아야 한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그동안의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시작은 보잘것없었다. 10년 전 취업에 성공하자마자 신림동 고시촌을 떠서울대입구역 싼 값의 셋집을 구했다. 하지만 북향이라 겨울에는 세탁기가 얼고 방음마저 안 되는지라 옆집 커플의 전쟁 같은 사랑 소리를 밤마다 들어야 했다. 겨울엔 매일같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꽁꽁 언 수도 호스를 녹였고, 야근으로 지친 몸을 누이면 하루는 신음 소리를, 다음 날엔 싸우면서 물건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참다못해 2년 계약기간 중 1년이 지날 무렵 이삿짐을 꾸렸다. 처음으로 은행에 가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이사 간 곳은 사당동의 전세금 1억 원짜리 신축 빌라였다. 이번에는 볕이 잘 드는 남향집이었다. 4년 동안 그곳에서 살면서 대출금을 갚았다. 을 모으는 데 왕도가 없다더니 방법이 하나 있긴 있었다. 빚을 지고 조금씩 갚아 나가는 것이었다. 쓸 돈이 없으니 낭비를 할 수가 없고 그게 바로 저축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 상수동 2억 원짜리 자그마한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 다시 예전의 그 은행으로 가서 익숙한 얼굴의 직원과 상담 후 대출을 받았다. 그럼에도 돈이 모자라서 고집에서도 천만 원을 지원받았다. 부모님의 노후 자금이었다. 돈을 받으면서 말씀드렸다. 제가 평생 매달 50만 원씩 갚을게요. 갚긴 뭘 갚아 결혼 선물이다, 실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지급 각서 쓰고 도장게 됐다. 부모 자식 간에 각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인간사 알 수 없으니 뭐든 확실하게 해 두는 게 맞다. 못난 마음에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려보고 십몇 년 뒤엔 내가 손해 보는 장사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계약기간을 채 1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아내가 갑자기 이사 가자는 말을 꺼냈다. 주택금융공사에서 신혼부부에게 저리로 빌려주는 상품을 이용해서 3억 원 대출을 받아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자는 말이었다. '빚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적극 부응하려 했던 것. 그때만 하더라도 3억 원이 누구 집 개 이름이냐? 그걸 어떻게 갚아, 하는 두려움에 아내와 많이도 다퉜다. 하지만 결국 아내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나름 여의도 금융권에 종사했던 사람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몇억 원 빚이 뭔 대수라고. 생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신혼집 길 건너편에 우뚝 서 있던 당시 10억 원짜리 밤섬 래미안 아파트를 8억 원을 빌려서 샀었더라면 지금 15억 원에 팔 수 있었을 텐데. 다들 억 억 거리니까 나도 현실 감각을 잃고서 억 억 거리게 된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를 구입했고 3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내는 며칠 고민하더니 또다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으니 이걸 팔고 빚을 조금 더 내면, 더 좋은 동네의 8억 원짜리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이번에도 아내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30년 만기 대출의 원리금을 이제 1/10 정도 상환했을 때였다. 집을 팔고 집을 사니 대출 잔액과 상환 기간이 처음의 숫자로 리셋돼서 슬펐다. 집을 다시 사느라 퇴직금도 중간 정산을 받았더니 내일 당장 퇴직하게 되면 빈 손으로 회사를 나와야만 해서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 모든 슬픔과 불안함을 잊게 해 주겠다는 듯 이사 온 지 1년이  됐는데 집값은 9억 원, 10억 원으로 점점 더 오르고 있다. 10년 전 신림동에서 하숙할 땐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액수. 서울 사람들은 다들 부자이거나, 부자의 자식이거나, 혹은 나처럼 빚쟁이인가 보다.


러다가 정말 우스갯소리처럼 서울 아파트값이 100억 원을 찍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소위 진보 정권에서 항상 집값 상승률이 더 지. 경제 성장과 세수 확보를 위해서는 부동산 거품을 꺼트릴 수 없는 걸까, 부동산 규제 정책의 시차 때문일까, 혹은 지난 정권에서 풀어놓은 규제의 효과가 이번 정권에서 나타나는 걸까.


나만 이게 궁금할 리 없다. 직장에서도 쉬는 시간에 차 한 잔 하면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식후 담배를 피우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짧은 시간에도, 출퇴근길 통근 버스에서도 모두가 아파트 이야기를 한다. 지겹지도 않은 듯 되풀이하는 내용들. 현재 한국의 30대들이 가장 많이들 하는 대화 주제는 집값인 듯하다. 멀리 갈 게 아니라 당장 우리 부서에도 2명의 경제 전문가가 있다.


"내년에는 분명히 대폭락이 옵니다. 이제 드디어 인구 절벽이 왔고, 코로나 19로 인한 실물 경기 침체가 부동산 가격에는 직격탄일 테니까. 제가 그동안 계속 얘기했던 폭락장이 결국 온다니까요. 물론 지난 정부에서 터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땐 최경환이라는 인간이 기재부 장관이 될 줄 몰랐죠. 이제는 진짜예요. 한계점까지 왔습니다."


이준구 교수의 팬인 H형은 열변을 토했다. 거의 10여 년 전부터 인구 추이 통계를 바탕으로 부동산 대폭락을 주장했던 우리 회사 '닥터 둠'의 주장이었다.


"그럴 수가 없어요. 지금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엄청나다니까요. 내년, 후년까지는 무조건 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겁니다. 어떻게든 지금은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할 때라까요. 아니, 그런데 이놈의 정부에서 대출을 다 막아놔서 실수요자도 집을 살 수가 없네. 제2금융권에라도 가 봐야 하나."


요즘 매일같이 은행을 드나드는 J 과장은 소위 '영혼 끌어모아'서라도 매매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무조건 오른다. 부동산은 불패라는 신화를 여전히 신봉하고 있었다.


가운데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양 극단의 주장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경제고 경기고 서민이고 정책이고 나발이고 내 아파트값만 변함없이 올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말도 안 되는 거품이 꺼지는 날이 올 거다. 그렇다면 지금의 가격 오르막길의 끝은 어디일까. 가격이 최고점팔아야 할 텐데. 이젠 나도 나름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으니 정의당이 아니라 한국당을 찍어야 하나. 이런 '속된 생각'에 한참 빠져있다가 건너편에 앉아있던 20대 신입사원 S에게 농 건넸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집을 사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차라리 차를 사겠다는 이 친구에게.


"OO 씨, 몇 년 이따가 우리집 좀 사 줘요. 집값 폭탄 돌리기를 하는 중인데 이제 곧 30대로부터 20대가 건네받아야 할 때가 올 거예요. 나도 돈 좀 더 벌고 털어야지. 빚내서라도 집을 꼭 사요. 알겠죠?"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다니. 며칠 전 논란이 되었던 여당 대표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나도 어느새 '천박한 서울 사람'이 다 됐나 보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벽에 커다랗게 붙여놓은 여느 식당 주인처럼 말이다. 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실상은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비아냥거리면서 했던 말인데, 의미도 모르고서 '창대'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흔히들 오용하고 있다. 뭐 어떠랴. 뭐든지간에 값이 비싸지고 창대해지기만 하면 장땡 아니냐, 라고 다들 생각할 게다. 


한참 끄적거리다 보니 정말 천박해지는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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