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만이라도 연휴답게 합시다.

착한 척은 하고 싶은데, 베풀 줄은 몰랐던 그들

by 서향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올해 추석은 개천절, 주말을 합쳐서 6일이나 되는 긴 연휴라서 많은 사람이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나는 백수이기 때문에, 추석 연휴가 시작되니, 오히려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백수의 특권인 평일에 놀기가 연휴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까지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백수보다는 그냥 연휴에 쉬는 직장인의 느낌을 받고 있다.


이번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인 목요일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5시 정도에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단순한 평일 퇴근이라고 보기에는 더 북적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아, 오늘이 연휴 전 마지막 근무일이지. 일찍 퇴근한 사람들도 많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갑자기 전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다녔던 그 회사는 서양적 마인드가 우세인 곳이었다. 다양한 외국어 교재를 만드는 곳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양 언어를 더 중요시하였고, 동양어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명절보다는 외국의 명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추석 연휴나 설날 연휴가 가까워져도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더니, 그 회사에는 연휴라고 해서 서울을 떠나서 다른 지방으로 가거나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직원들의 대부분이 미혼인 2~30대이고 서울 출신이 많아서 부모님을 뵈러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고, 대표들이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명절에도 가족이나 친척 모임을 굳이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명절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회사에서 주는 명절 선물인데,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에는 '마스크' 한 상자를 회사에서 나눠주고, 그다음 해부터는 들고 가는 것이 무거울 것이라고 집으로 택배로 보내줬다. 그리고 항상 '배'였다. 그리고 명절이라고 해서 나오는 보너스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명절이 다가와도 선물이나 보너스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명절은 단순히 쉬기 위해서 기다렸던 것 같다.


그리고 연휴 전날,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것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떠나야 편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이전에 일했던 회사들도 조기 퇴근을 무조건 하는 곳을 아니었다. 첫 회사는 아예 조기퇴근이 없던 곳이라서, 당시에는 연휴 전에 조기 퇴근의 존재조차도 몰랐다. 그리고 다음 회사는 팀별로 조금 달랐는데, 내가 속했던 팀은 팀장을 대표님이 담당하시는 특이한 구조라서, 우리 팀만 퇴근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그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입사 후 첫 연휴가 다가오자, 이 회사는 과연 조기 퇴근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졌다.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연휴 전 조기 퇴근은 필수가 아니니까 그러려니 했다. 만약 필요하다면 휴가를 내거나 하면 되지만, 나도 연휴라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입사 후 첫 연휴였던 추석이 지나갔다.


그런데, 12월 24일 점심시간 이후, 갑자기 전체 공지가 뜨는 것이다. '오늘은 모두 5시에 퇴근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다들 기뻐하기보다는 당황스러워했던 것 같다. 개중에서는 조금 더 일찍 알려줬어야 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약간의 어수선함이 있었지만, 5시가 되자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했다. 그리고 연휴 전 조기 퇴근에 대한 기대감이 우리 모두에게 생겨났다.


그리고 그다음 돌아온 설날 연휴 전날에도 공지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정시 퇴근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미리 적어두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조기 퇴근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파친코 기계는 랜덤으로 보상(=구슬)을 주기 때문에, 다들 중독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연휴 전 조기 퇴근은 파친코 기계 같았다. 차라리 한 번도 없었다면 기대하지도 않았을 텐데...


매번 연휴 전날이 되면, 조기 퇴근을 기대하는 직원과 조기 퇴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대표의 기싸움이 이어졌다. 랜덤 행운을 노리는 직원들과 착한 척을 하고 싶지만 조기 퇴근을 시키고 싶지 않은 대표들의 기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조기 퇴근이 가능하더라도, 뭔가 마음에 찜찜함을 남기는 상황뿐이었다.


한번은 이랬던 적이 있다. 연휴 전날이었고, 당시 계속 업무가 바빴었기 때문에, 나는 조기 퇴근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약간 나른해지기 시작하는 3시가 다가오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공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남은 시간 동안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다 정리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은 7시다.) 그런데 6시가 되자, 갑자기(?) 대표가 "자, 이제 정리하고 퇴근합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하던 업무를 멈추고 퇴근하기는 애매해, 업무를 정리하고 일어났더니, 6시 30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상황이 비슷했다. "진짜 이럴 거면 왜 6시에 퇴근하라고 하는 거야..." 7시 거의 직전에 회사를 빠져나오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카톡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더 황당하다. 연휴 전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대표가 전 직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드가 업무를 완료하면 다들 집에 갈 수 있어요."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지? 일찍 가려면 헤드한테 가서 빨리 일을 끝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냥 "오늘은 연휴 전날이니까 4시에 퇴근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정시 퇴근을 하라고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헤드는 항상 일이 많아서 정시 퇴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헤드는 집도 회사 근처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은 다음 날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발언은 헤드를 위한 것도, 다른 직원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헤드에게 쓸데없는 짐을 지워 주는 것이고, 다른 직원들은 정확한 퇴근 시간을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업무처리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헤드도 나름 똑똑한 친구라서, 대표의 그 말 바로 다음에 "제가 일을 4시까지 마쳐 볼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4시가 되자, 대표가 헤드 옆에서 여러 번 다 했는지를 확인하는 모션을 취했다. 그리고 헤드가 "다 했습니다."라는 말을 하자, 대표가 신난 얼굴로 "그럼 다들 퇴근하세요."라고 말했다. 퇴근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참 엄청난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궁금하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대표가 무슨 말을 했을까? 그리고 직원들은 몇 시에 퇴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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