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원두는 고르게 해 줘요.
내가 다녔던 회사는 직원이 10명 남짓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회사가 고도성장을 하는 중이어서 4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었지만, 성장이 멈추고 1~2년 만에 많은 사람이 퇴사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인원이 줄기만 했다.
4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었을 때 E 대표가 나에게 복지에 관해서 물었던 적이 있었다. 회사가 고도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에게 여러 가지를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했던, 또는 옆에서 보고 좋아 보였던 복지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1. 외국어 교육비 지원
많은 회사는 직원들의 자기 계발을 돕기 위해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비용을 어느 정도 지원해 준다. 내가 다녔던 첫 회사도 외국어 교육 복지 차원에서 학원비의 50%를 부담해 줬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영어 공부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학원 강사 시절에서도 회사에 제출하겠다고 서류를 부탁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만큼 많은 곳에서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제일 먼저 E 대표에게 말했다.
"외국어 교육? 우리가 외국어 교육 회사니까 우리 교재를 주면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교재 라인업은 복지를 운운할 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뭔가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는 측면에서는 우리 회사의 교재를 구입하는 것도 좋은 자기 계발이기는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공부한 언어에 대해서는 각자의 수준에 따라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대표의 말에 조금 반박해 보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 회사의 외국어 교육비 지원은 딱 2개이다.
입사한 후 1개의 과정 무료, 그리고 그 외의 과정은 50% 할인.
2. 운동비 지원
이전 회사에서 운동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복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대표들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비 지원을 이야기해 봤다. 그런 기억은 있는데, 대표의 반응이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냥 그렇게 지나갔나 보다.
운동비 지원은 아예 비슷한 것도 없다. 다들 그냥 자신이 알아서 운동하거나 아예 안 하고 있다.
그리고 대표들은 그 비싸다는 버핏그라운드에 몇 년째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3. 도서 지원
도서 지원은 내가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조교로 일하던 곳의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매달 2권씩 학교에서 지정한 서점에서 책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금액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권이었던 것만 기억한다. 그래서 직원분이 자신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며, 나에게 한번 그 혜택을 양보해 준 적이 있었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회사도 교육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꼭 공부에 관련된 책이 아니라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소설을 읽는 것도 결국은 업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개발에 필요한 책은 우리가 무한대로 사 주잖아? 그거 말고 다른 거야?"
대표가 물었던 것은 '복지'였는데, 나의 제안에 대해서 돌아온 답변은 '업무'였다. 교재를 개발하는 회사여서 우리 회사에는 책이 많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책들은 거의 장식용에 가깝다. 왜냐고? 책들이 전부 대표들의 방구석에 꽂혀 있어서 평소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책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해서 제안한 것이었는데, 교재 개발에 필요한 책은 사 줄 수 있으나 복지 차원에서는 책을 구매해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대표가 말한 '무한대로 사 준다는 것'도 거짓에 가깝다. 이전에 시험 교재를 개발하는 선생님이 책 10권 정도를 한 번에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다 필요한 것인지를 따지다가 결국 5권 정도로 타협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교재 개발을 위한 책을 사주는 데도 엄청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들은 업무용으로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선생님이 퇴사할 때 회사에 두고 갔다.
4. 탕비실 지원
앞에서 제안한 3개의 복지는 직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는 목돈이 들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대표가 거절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탕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회사 탕비실에는 에스프레소 머신, 네스프레소 머신, 커피 브루잉 머신이 있었는데, 나머지는 다 고장 나고 에스프레소 머신 한 개만 남았다. 말만 들으면 엄청 멋질 수 있지만, 카페를 하던 시절에 남은 유물이었다. 잔고장이 많다. 그리고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좋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은 졸리기도 하고, 단것이 당기기도 하는데 마실 수 있는 커피믹스가 없다. (회사 탕비실 커피믹스는 국룰인데!) 그리고 드물지만 손님이 오셨을 때, 대접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특히나 그 손님이 커피를 드시지 않는 경우에는 더 하다. 그래서 탕비실에 녹차 티백이나 간단한 간식거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사달라고 해. 우리가 언제 안 사 준 적이 있었어?"
이제는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복지에 관해서 물었는데, 이런 대답이라니. 할 말을 잃은 나에게 대표가 쐐기를 박았다.
"원두 제공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으니까, 진짜 좋은 복지 아니니?"
여담이지만, 회사에서 사 놓는 원두가 너무 강하고 진해서, 나는 여러 번 카페인 하이를 경험했다. 그리고 몇 번은 심한 두통이 생기기도 했고. 그리고 그 원두조차 아무나 접근하면 안 된다는 느낌이 있어서, 이전에 어느 직원은 나에게 원두를 사서 온 거냐고 묻기도 했다. (당시 그 직원은 입사 2년 차였다!)
5. 그런데... 줬다가 뺏은 것들이 있다.
1,2,3번은 아예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라고 하지만, 4번에 대해서는 사실 이 회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에는 냉장만 가능한 큰 냉장고가 있는데, 내가 입사했을 초기 몇 달은 그 냉장고에 항상 다양한 음료수가 채워져 있었다. 생수, 콜라, 사이다 등등. 그래서 강의 촬영하러 오시는 분들에게는 생수를 항상 제공할 수 있었고, 일하다가 약간의 리프레시가 필요하면 탄산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늘어나고 냉장고가 금방 비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니까, 어느 순간 조용히 냉장고가 텅 비어버렸다. 그래서 강의 촬영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제공할 생수는 그냥 사비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고, 담당자가 그런 센스가 없는 경우에는 생수도 없이 촬영만 하고 가시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게 그 당시 사무실 주변에 편의점, 카페가 많아서, 여러 번 촬영하러 오시는 분들은 필요한 경우 미리 음료수를 사 오는 경우가 많았다. 냉장고가 텅 비어버린 것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있었던지, 어느 날 갑자기 '이달의 음료'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매달 말에 1명의 직원을 지목하여 원하는 음료를 고르게 하고, 그 음료를 그다음 달 동안 냉장고에 채워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것조차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직원들이 몇 번 부활을 제안해 보았지만, 내가 퇴사할 때까지 부활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딱 한 번 간식 창고가 제공된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가 있던 사무실은 작은 건물의 3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1개의 층은 스튜디오 등으로 원래 업무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2개의 층으로 직원이 나뉘어 있었다. 그러다가 인원이 줄고, 대표들이 직원을 감시하고 싶었는지 1개의 층에 모든 직원이 모이게 되었는데, 대대적인 자리 이동을 끝내고 난 후, 코너별로 간식 창고(=사물함 1칸)가 제공되었다. 그리고 다 먹은 후에는 재경팀에 요청하면 다시 채워 준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채워지는 날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