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1.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 위기
일본 불매운동으로 학원의 학생 수가 절반 이하가 되었다. 원래도 그렇게 많은 학생이 등록하는 강의를 맡고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내가 맡은 90% 이상의 수업이 1명 또는 2명이 등록했다. 1명은 무조건 폐강이고, 2명이면 강사의 재량에 따른다. 2명일 경우 한 달을 강의하더라도 거의 봉사 수준의 금액이 돌아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생님은 2명일 경우 폐강을 선택한다. 하지만 일본 불매운동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릴 것이 없었다. 2명이라도 오면 감사한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수입은 이전 평균의 반의반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어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찾았다. 주로 번역이었지만, 번역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루트를 찾지 못했다. 강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어서 일반 회사의 공고도 살펴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에 띈 공고 하나.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 공고 하나가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힐 줄은...)
내가 나가던 학원의 강의실에서 좀 신기한 간판이 하나 보였던 적이 있다. 궁금해서 여러 번 검색한 결과 G 언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어를 밝히면, 바로 어느 학원인 지 알게 될 정도로 소수 언어이기도 해서 일단 G 언어라고 해 둔다.) 배우고 싶었던 언어라서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는데, 그 곳에서 일본어도 시작하려고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거의 5년 전이라 공고의 내용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어 콘텐츠 개발'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가기 전 친구에게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2. 면접인가? 회의인가?
면접 일정을 알려 온 사람에게 '강의 시연도 하셔야 하니, 준비해 오세요.'라고 들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기초 단계의 강의를 PPT와 함께 준비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노트북도 챙기고 갔다. 면접 장소는 당시 회사가 운영하고 있던 카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일반 영업은 하지 않고 학습자 대상으로 이벤트를 할 때만 사용했던 것 같다) 회사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얼굴을 본 적 있던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이 같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면접이라기보다는 그냥 프로젝트 회의와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강의 준비해 오셨죠?" 카페였기 때문에 마땅히 연결할 프로젝터도 없어서 그냥 가져간 노트북을 열고, 막 했던 것 같다. 면접에 들어 온 두 명 모두 일본어를 모른다고 해서, 오히려 더 어색한 강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두 명은 마음에 들었는지, 갑자기 자신들이 준비하는 교재의 형태가 이러이러한데, 커리큘럼을 짜서 다시 보자고 했다.
며칠 뒤, 커리큘럼을 짜서 다시 그들과 만났다.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고 한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피드백이 강했다. "저희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왕초보를 대상으로 교재를 만들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건 좀 어렵지 않나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왕초보를 위한 커리큘럼을 짰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이유 없이 비판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목에 적혀 있는 한글 해석만 보고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언어마다 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들만의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이런 피드백을 받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아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 '같이 합시다'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순히 커리큘럼 작성도 면접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커리큘럼을 본 다음에 '같이 하자' 또는 그다음 스텝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 없이 한번더 커리큘럼을 수정해 달라고 했다.
다시 커리큘럼을 수정해서 그들을 만났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조금은 유해진 듯한 모습으로 커리큘럼을 보더니, 갑자기 원고 집필 일정을 들이밀었다. 당시 내가 요청받은 원고는 총 150강으로, 1주에 30강씩 끝내달라는 요청이었다. (1강의 페이지 수는 다른 교재에 비하면 적은 양이기는 했다) 그리고 강의 촬영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당황해서, 조금 더 설명을 요구했고, 그제야 그들은 150강의 교재 집필과 강의 촬영까지 해서 1건의 프로젝트로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금액도 알려 주었다. 그런 계약을 처음 하는 나로서는 금액이 높은 것인지 낮은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수입이 0였기 때문에 그러한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3. 소속 학원과의 협의
당시 나는 한 학원의 일본어 강사로서 다른 곳에서 강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과 계약을 하기 전에 학원에 물어봐야 했다. 학원에서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포기하려고 했다. 당시 학원과의 이야기다.
"온라인 강의인 거죠?"
"네. 교재도 제가 만들고, 강의를 찍는 형식이라고 해요."
"온라인이라면 저희(=오프라인)와는 겹치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아, 그런데 저작권이나 수익 배분은 어떻게 되나요?"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어서, 회사 측에 다시 물어보고 대답을 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회사 측에 물어보니,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저작권은 다 저희가 가져가고, 수익 배분은 따로 없어요. 계약서에 적힌 금액만 받아 가시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학원 측에서 질문한 다른 질문도 했다. "강의는 몇 년 동안 서비스되나요?" "흠... 그건 모르겠어요. 아마 계속 서비스하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받은 대답을 그대로 학원에 전달했고, 크게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아서 나는 그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면서, 당시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학원에서 질문하는 것들에 대해서 대답할 때, 왜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는지, 그리고 모호한 답변을 했는지. 그냥 이들은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돌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도전적이라고 생각해서 좋아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조금 더 세상 물정을 알았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에도 그들의 모호함은 계속되었고, '교재 집필'과 '강의 촬영'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검수'와 '추가 촬영' 등등의 요구가 이어졌다. 물론 추가되는 지급 금액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