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명에 한 명꼴로 걸리는 병
D+2
새벽에 남편은 중환자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환복을 할 틈도 없이 남편허리에 바늘을 꽂고 뇌척수액을 뽑는 걸로 보아 남편의 병이 위중한 것임을 직감했다.
병원규칙상 보호자 한 명이 허락되는 응급실, 나는 아이들보다 내가 남편곁을 지키고 싶었다. 간절한 남편의 눈빛을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유리 막대에 남편의 맑은 척수액이 똑 똑 떨어진다. 연세가 있으셔서 자칫 척수액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의료진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었기에 눈물방울 같은 척수액이 나오는 게 감사하였다.
척수액을 채취한 다음 여섯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남편의 몸은 이미 굳어 있어서 움직일 수 조차 없다. 나는 남편에게 일렀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얼마나 심한 망발인가
남편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갔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남편이 입고 간 옷을 나에게 건넸다.
새벽 세시, 텅 빈 병원의 복도에 나는 남편이 벗어놓은 옷과 함께 남겨졌다.
집에 돌아온 잠시 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았다. 환자에게 놓아줄 면역 글로불린 주사의 사용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남편의 병명은 '길랑바레증후군'이며 망가진 신경을 소생시키는 면역주사인 글로불린 주사는 한 대당 오십 여만원씩 모두 다섯 대를 맞아야 한다.
그나마 치료할 수 있는 주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뭐든. 뮈든지요 남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D+3
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은 질병이다. 잘나고 못나고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방심하면 걸리는 게 병이다.
님편의 병명을 알게 되었다. 길랑 바레 증후군이라는 병이다. 인구 십만 명당 한 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에 남편이 걸린 것이다. 자신의 면역계가 판단 오류를 일으켜 나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아주 쉽게 이해시켜 주신다
다행히 '면역글로불린'이라는 치료제가 있어 이 주사를 하루에 한 대씩 모두 다섯 번을 맞게 된다고 했다. 오늘 그 한 대를 맞았다고 한다. 제발 효험이 있기를...
종환자실은 매일 오후 1시에 20분간 단 한 명의 가족만 면회가 된다. 코로나 시즌에는 그조차 못했던 걸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면회 전 담당선생님의 면담을 요구했기에 미리 가서 기다렸다.
그때,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남편이 침대에 실려 나왔다. 근조직 검사를 받으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의 침대말미를 뒤따라갔다. , 어제 새벽에 중환자실에 입실했는데 아직 까지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아직은 자가 호흡이 가능한 것 같았다.
검사시간은 꽤 길었다
그때 검사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와 의사들이 떼를 지어 들어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또다시 그때 느꼈던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을 느낀다.
새파래져 가는 남편의 입술...
불안한 의료인들의 눈빛..
일사불란한 몸짓...
위기를 넘겼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안도의 분위기...
남편은 근조직 검사중 목에 가래가 막혀 심정지가 왔다. 하마트면 생각하기도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느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기도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울었다.
* 위기를 넘겼다. 살아줘서 고맙다
* 석션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중환자를 긴시간 근조직 검사를 한 의료진에게 유감을 표한다
* 남편의 입에 산소 호흡기가 끼워지고 콧줄을 통해 식사가 투여되기 시작했다.
* 면역 글로불린주사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