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중환자실을 떠나 일반 병실로 입실하였다
D+29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오늘로 꼭 한 달째다. 내일은 드디어 일반 병실로 옮기는 날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 길랑바레는 정점을 찍었으나 망가진 신경이 되살아나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남편의 몸에는 근육이 모두 사라졌다. 손목에는 (심지어 손가락까지) 주삿바늘이 찔려있고 콧줄을 통해 식사를 하고 기관지를 절제해서 호흡을 하고. 있다. 온몸에 링거와 주사줄, 소변줄이 매달린 상태로 일반병실로 가는 게 두렵다. 중환자실을 벗어난다고 해도 남편은 역시 중환자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간병인에게 모든 게 맡겨진다. 지금부터는 간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행히 경험이 많은 간병인과 인연이 닿았다고 딸아이가 전한다.
일반병실로 간다는 말을 듣고 남편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인다. 중환자실에서의 한 달이 남편에게는 십 년 그 이상의 시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폐렴은 나았지만 아직도 목에서는 가래가 차 오르고 있다. 스스로 침을 삼킬 수가 없으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석션을 해야만 한다. 다시 이곳 중환자실로 오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D+30
드디어 중환실에서 일반병실로 가는 날이다. 그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비가 추적거린다.
중환자실의 침대에 실려 나오는 남편을 딸과 사위 그리고 내가 맞이했다. 멀리 대구에서 사신다는 간병인도 오셨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분이시다.
이제 입원실에서는 침상재활 치료를 하게 된다. 한 달 후 남편의 모습은 얼마나 나아져 있을까,
한 달 전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한데 그래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남편은 한때 호흡곤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달기 전 근전도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는 도중에 목에 가래가 막혔기 때문이다 그날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남편은 자꾸만 불안해한다.
3인실로 배정된 남편침상의 머리맡에는 종환자실과 다름없는 기계들이 있다. 기계에서 들리는 소리와 숫자에 민감해졌다. 남편의 상태가 위급하면 제일 먼저 기계가 알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도 불안한가 보다
자음 모음 자판을 보며 눈으로 말한 글자가 '종'이라는 단어였던 걸 보면... 간병인에게 의사를 전하고 싶을 때 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또다시 호흡곤란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다이소에서 작은 종을 한 개 사서 남편의 엄지발가락에 걸어두었다.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건 발목뿐이니 종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구명수단이다. 엄지발가락을 흔들어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 해 진다.
이제부터는 하루 24시간을 간병인이 보살펴야 한다. 간병인에게만 맡길 만큼 남편의 병은 호전적이지 않다. 낮에는 내가 간병인과 함께 간병을 하기로 했다. 간병인 혼자서 남편을 돕기에는 너무 힘든 환자라는 걸 안다. 내가 곁에 있는 동안이라도 간병인이 휴식을 취했음 해서다.
늦은 밤. 남편을 병실에 두고 오는데 내리던 비가 그치고 눈으로 바뀌었다. 힘들고 지친 발걸음이 마치 허공을 딛는 듯하다.
길가에 눈이 쌓인다. 첫눈이다.
♧중환자실에서 한 달간 꾸준히 써 온 간병일지를 1년이 지난 지금 올렸습니다.
남편은 현재 재활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아직 스스로 걷지는 못하지만 기구에 의존하여 걷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날들을 기록하면서 이 글을 남편이 꼭 일어나 읽어주기를 염원했습니다. 그 소원이 이루어 졌음에 감사드리며 남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걱정해 주신 독자님과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