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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우 Jul 12. 2021

반전의 자대 배치

훈련소에서 자대에 발을 딛기까지


 
 

 반전의 자대 배치


 

   훈련소에서 자대가 배치되기 전 나는 이상적인 내 직책을 상상해봤다. ‘ 적당한 일을 하면서 독서와 사색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 이것이 내가 바라던 군대에서의 위치였다. 그거면 될 것 같았다. 힘든 육체 노동을 하며 군인 다움으로 무장한 곳이 아닌. 자유시간이 일과 시간에게 빈번하게 공격받는 곳이 아닌, 적당한 노동(이왕이면 문서를 작성하고 머리와 정신을 사용하는 노동)과 휴식이 보장되는 곳 말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직책이 ‘운전병'이었다. 훈련소에서 운전을 하는 이들은 그다지 힘들지 않게 핸들을 돌리고 육중한 차를 움직이며 일과를 진행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훈련을 하던 훈련생들의 눈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우리를 의식한 채 운전을 하는 저 운전병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내 옆에서 함께 훈련을 하는 동기는 수료를 하면 이제 저 자리로 간다니! 운전병들이 부러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대기 시간 동안 개인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차량을 운행하는 시간 만큼 대기 하는 시간도 길었다. 어느 장소에 도착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차에 앉아있거나 책을 보거나 잠을 청했다. 그 공간과 시간이 부러웠다. 내가 운전병이 되기는 이미 글러먹었지만 그래도 저것과 최대한 유사한 자리로 가고 싶다고 염원했다. 



   아, 망했다. 중대장님은 아주 명확한 발음으로 ‘이종우 , 공병대대.’라고 말했다. 싸늘했다. 얼마 있지 않아 ‘공병'이라는 단어에 묻어있는 정보들이 떠올랐다. 다리를 만들고 뭔가를 세우고 또 아주 무겁고 힘든 것을 계속해서 옮기는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내 이상은 판타지였고 나는 내가 그렸던 곳의 정반대 보직을 맡았구나. 서로의 자대배치를 묻고 답하며 새로 맞이할 세계를 상상하며 한 껏 흥분하던 훈련소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억지로 힘을 줘 입꼬리를 살짝 치켜 올렸다. ‘에이, 특별하니까 됐지 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동기들이 가는 7연대, 2연대 이런 곳보다는 그래도… 특별하니까.’동기들라고 생각하며 자위를 해보기도 했다. 잘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대중상업영화의 꿈을 꾸면서도 독립영화의 독창성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밤은 후련하면서도 찝찝했다. 기대 5%, 절망 95% 정도 됐던 것 같다. 


 

   자대로 가는 날 지난 한 달 동안 동거동락했던 동기들이 하나 둘씩 방송에 이끌려 빠져나갔다. 생활관을 나서는 동기를 껴안을 때 뭉클하며 눈물이 찔끔 올라올 뻔 하기도 했다. 내 이름은 지독히도 불리지 않았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자대로 가는 건 그다지 불안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글러먹었으니 말이다. 단지 배가 아파서 였다. 최후의 만찬치고는 지극히도 평범한 마지막 훈련소 아침을 너무 빨리 먹어였을까. 배가 슬슬 아파왔다. 방송에서 내 이름을 호명하면 바로 뛰쳐나가 버스에 올라야하는 상황이었기에 조교들은 화장실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픈 배를 쥐어잡고 나는 자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잠.. 잠시만요.' 를 외치고 차를 세우게 한 뒤 갓길에서 볼 일을 보는 상상을 해봤다. 공병대대로 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다행이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은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동기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힘을 합쳐 조교에게 부탁을 거듭한 끝에 받아낸 허락을 듣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칸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을 보면서 쓸쓸함이 커졌다. 동기들을 떠나보낼 때보다 더.



  화장실은 자동으로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였기 때문이다. 훈련소에서 개인적인 공간은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자고 다닥다닥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고 훈련을 했다. 나는 조교와 동기들의 시선에 항상 노출된 상태였다(이는 자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유일하게 나의 몸을 타인의 시선으로 부터 차단해주는 공간이 화장실이었다. 아주 잠깐 주어지고 위생적이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서 인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화장실에는 칸마다 낙서가 적혀 있다. 아주 유치한 글귀가 대부분이었다. ‘21.04.05 수료~ 수고해~.’, ‘우리는 갈게 너희는 각개.’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은근 화가 났다. 괘씸한 것들, 좀 만 기다려라 나도 이 화장실 벽이라는 역사판에 내 악취나고 유치한 기록을 남기고 가고야 말겠다. 나는 대단한 업적이라도 남긴 학자라도 된 마냥 똥을 쌀 때마다 이렇게 다짐했다.


 결국 나는 낙서를 하지 못했다. 갈 때가 되니 다른 것에 신경쓸 게 많아져서 인지 그냥 귀찮아서 인지, 앞으로 들어올 친구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쓰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들어오니 한 달간의 시간이 되감아졌다. 또 한 달간 내가 몇 번 화장실에 앉아 비슷한 걱정과 고민을 했으며 몇 번 낙서를 보며 복수를 다짐했는지 세어보게 되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시원하게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훈련 기간에는 그토록 귀한 휴지들이 화장실 칸마다 세면대 하나하나 마다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화장실에 가득 놓인 휴지를 보며 한 때 치열하고 찬란한 영광을 누렸지만 패망해 폐허가 되어버린 유적지를 보는 것 같았다. 

 

   최후의 거사를 마치고 처음 들어왔던 철문을 빠져나갔다. 일반 차량들은 위병소를 거쳐 출입을 하는데 훈련병들은 자대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들어왔던 철문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것은 하나의 의식같았다. 물론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위한 목적이 컸겠지만 같은 곳을 딱 두 번. 들어올 때, 나갈 때 지나치게 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났음을 알리는 행사의 성격도 분명 존재하는 듯 싶었다. 어라, 내가 탈 버스가 없었다. 하긴 공병대대로 향하는 것은 상철이라는 친구와 나 뿐이었으니 뭔가 작은 소형 차량을 타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 인사를 담당하는 것 같은 중사님이 와서 나와 상철이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2018년 식으로 추정되는 산타페가 있었다. ‘나 이거 타나?’ 생각이 들 때쯤 중사는 트렁크를 열고는 짐을 넣으라고 했다. 이 싸제 차량을 본 순간 부터 아주 약간, 정말 희미하게 남아있던 5%의 기대가 커지는 것이 보였다. 일반차량을 타고 간다고 좋은 부대로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공병대대'를 처음 듣고 애써 자기위로하는데 쓰인 ‘특별함'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버스와 군용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 동안 나는 승용차로 이동을 한다는 특별함. 

 
 

   어라, 창 밖으로 민간인들과 듬성듬성 솟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망의 징조가 더 커졌다. 부대가 시내와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중사님과의 질의응답시간은 희망을 확신으로 만들어줬다. ‘부대에서 동송 시내까지 5분 거리야, 동송버스터미널 까지는 택시로 한 6000원이면 갈껄?’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부대는 정말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입장했다. 청성 6사단 공병대대. 내가 일 년 넘게 남은 군생활을 보내야하는 바로 그 공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무거운 의류대를 들쳐매고 부대로 들어갔다. 늙었다. 그게 내게 다가온 부대의 첫인상이었다. 부대는 마치 화장을 두껍게 펴발라 자신의 얼굴에 남은 시간의 흔적을 애써 가리려는 늙은 노인 같았다. 페인트가 심하게 벗겨진 곳도 없었고 건물은 크게 부서진 곳 없이 제 역할에 맞는 모양새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 펴바른 페인트와 새로 박은 못으로도 건물이 내뿜는 나이를 감출 수 없었다. 색이 바란 부분들과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봤던 글씨보다도 오래된 글씨체로 써 있는 소간판들, 휘어버린 파이프 가장 자리에 슨 녹 들이 은은하게 자신의 나이를 내비쳤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낡음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랜시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쌓아온 노인의 지혜, 주름살에서 풍겨나오는 푸근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낡았다는 첫인상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었다.


   훈련소에서 처음 들어온 날처럼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을 훑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낯선 언어들, 강한 인상과 착해보이는 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려 애썼다. 의류대를 풀고 어떤 간부가 내게 보직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몰랐다. 간부는 내가 통신병 직책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통신병' 세 글자에서 달콤한 냄새가 감지됐다. 간부는 평상시에는 통신병이 따로 할 일과가 없기에 행정 직책을 맞게 될 거라 했다. ‘아 맞다,’ 라는 생각의 뒤에 ‘아 됐다.’ 라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아, 맞다.’ 나는 훈련소에서 보직을 신청할 때 2지망에 ‘무선통신관리/운용병’을 지원한다고 했다. 대충 통신장비를 메고 다니면서 무전기로 통신을 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래도 보병보다는 특수하고 덜 힘들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아 됐다.’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야전공병의 이미지가 주는 압박에서 해방되어갔다.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지뢰를 탐지하고 무거운 철근을 끙끙거리며 옮기는 이미지는 추울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이미지로 덮이고 있었다. 됐다, 내가 원하던 이상향이 이렇게 갑작스런 간부의 말 한마디에 이뤄졌다.  이런 우연과 행운이 있나. 감탄했고 신비로웠다. 나의 어떠한 노력도 첨가되지 않은 천운이었다. 물론 군에서 작성하는 생활기록부를 깜지처럼 열심히 적긴 했지만 그것이 이 보직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리는 만무하다. 아무런 죄도 없이 공병대대로 발탁된 것과 같은 논리였다. 이 기묘한 긍정적 아이러니함을 오르가즘처럼 만끽했다. 이토록 행복한 반전이 있을 수 있을까. 통신병, 행정병이라는 단어 한 마디에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그것은 과연 과잉된 허무한 기대가 아니었다. 내가 예상했던 통신병의 삶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임들이 통신병이자 행정반을 지칭하는 ‘계원’ 소속이 된 나를 부러워했다. 처음에는 계원이 무슨 말인가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자 ‘계 단위의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 이라고 나왔다. 참,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게 이 또한 기묘한 운명의 농담이 아닐 수 없었다. 입대를 하기 이틀 전 계원예고를 방문하길 너무 잘했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공병대대의 통신병, 행정병이 되었다.  

 
 

  이런, 불안하다. 행정병이 많아서 아직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내가 여기 왜 있냐는 행정보급관님의 말에 내 선임이 ‘종우, 교육계원이라 행정반에서 일 알려주고 있어요.’ 라고 말하자 행보관님은 ‘누구맘대로.’ 라고 받아쳤다. 다행이 거기엔 선임의 앞선 판단을 비꼬는 듯 한 장난조가 섞여있었다. 그러나 한낱 초파리 같은 이등병에게 그 말은 생존의 위기가 달려 있는 말이었다. ‘행정병력이 너무 많아서… 다른 보직으로 강제 이동되면 어쩌지….’ 찝찝했다. 빨리 일을 받아서 업무를 수행하고 싶었다. 행정반에 소속되어 확실히 내 위치를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굉장히 육체적으로 편한 일과를 보내게 하지만 내 정신에는 큰 불안을 야기한다. 그나마 오늘 희망의 불씨가 보였다. 얼마 전 휴가에서 복귀한 내 사수가 통신장비에 관한 인수인계를 해줬기 때문이다. 일단 통신병이라는 보직은 확실해졌다. 이제 저 복잡하지만 시원한 계원의 세계에 발을 디딜 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다리는 중이다. 뜬금없이 뒤바뀐 보직배치의 희비처럼 되려 또 한 번 운명의 장난질을 받아 지금의 즐거움이 더 큰 괴로움을 만들까 불안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아직까지는 나의 이상적인 군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듯 싶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음,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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