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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군 Oct 28. 2021

Cold Mountain, 2003

혹시 당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기다릴 수 있나요?

인만하고 나눴던 얘기를 생각하며 몇 글자나 되나 세어봤는데 얼마 안 돼요. 그런데도 항상 그리워요. 
난 네 엄마를 결혼 22개월 만에 잃었지만 그 정도면 평생 마음에 남더구나.

에이다와 아버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에이다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인만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갖지만 서로를 알아가기 전에, 마음을 다 표현하기도 전에 남북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고 만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전쟁의 폐해를 그린 영화로도 볼 수 있으며, 인만의 시점에서 오딧세이로 읽을 수도 있으며, 에이다의 시점에서 한 여성의 성장기로 읽을 수도 있다. 어느 시각에서 봐도 괜찮은 영화이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르네 젤위거를 보며 완벽한 조연에 대해서 논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3가지 주제로 톺아보려 한다. 


첫 번째, 전쟁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것

콜드 마운틴에 사는 젊은이들은 징병 소식에 환호하며 북군을 물리치고 1달 뒤에 돌아올 거라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젊다는 것은 소중하지만 그만큼 어리석기에 불안하다. 인만은 전쟁터에서 징병되기에는 너무 어린 마을 청년 오클리를 발견하고 그를 구한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은 오클리는 병동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사망한다.


(바이올린 연주자에게)달콤한 곡을 듣고 싶어요. 고향에서 날 기다리는 여자처럼요. 비숍 계곡에 있을 때 갈증을 없애주던 시원한 물 같은 노래요. (인만에게)먼저 콜드 마운틴에 가 있을게요.

이후 인만은 자신을 기다리는 에이다에게 돌아가기 위해 탈영한다.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그 중 한번은 숲속에 사는 노파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남는다. 노파는 인만을 도와주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어찌보면 인만이 전쟁터에서 자신보다 어린 오클리를 도와주려 했던 것처럼 전쟁은 다음 세대를 위해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국가나 정부 따위지 개인은 살아남지 못하면 모두 패배자다. 전쟁에 참여한 세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두 번째, 기다림의 이유는 시간에 비례할 필요는 없다

에이다는 한번도 데이트를 해보지 못한 상대 인만을 2년 넘게 기다린다. 물론 둘 사이에 대화는 많이 오고가지 않았어도 감정은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에 비약이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뭐 대학생들 중 꽤 많은 커플이 군입대 전에 잠깐 사귀었다가 만난 기간보다 더한 기다림을 감내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에이다의 경우 인만의 생사조차 불분명하다. 그녀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황폐해져 간다.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루비의 도움으로 농장일을 배우며 인간으로서의 홀로서기를 배운다. 이제 그녀는 사랑 하나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오만과 편견>의 베넷 가문의 딸들이 아니다. 루비와 함께라면 대농장을 일구며 평생 부족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위 아래 인만을 품고 ‘기쁨을 주지 않는 듯해도 꼭 필요한 존재’로 잊지 않는다. 에이다에게 기다림은 땔감이다. 추운 날엔 기다림으로 마음이 얼지 않게 하고, 여름엔 농장일 때문에 바쁘더라도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땔감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영화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꼭 그 이유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크기가 크건 작건 삶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땔감이 없으면 마음을 녹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 번째,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전쟁에서 겨우 돌아온 인만이 에이다를 다시 만났을 때 에이다는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인만은 에이다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는 절망스런 얼굴로 뒤돌아 선다. 다행이 뒤늦게 인만을 알아본 에이다가 그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임시 거처로 돌아온 두 사람은 격정적으로 키스하거나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다. 어색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어둠에 빠지지 않게 지켜줘요.
내가 어떻게요? 우린 서로를 잘 모르고 만난 적도 몇 번 없어요. 
수천 번이었어요. 그 순간들은 마치 다이아몬드로 가득 찬 주머니 같았죠. 현실이건 상상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의 목선 그건 현실이니까. 당신을 끌어안을 때의 내 손길처럼.

이 대화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로 얼마나 첫눈에 반했는지 설명하는 대화일 뿐이다. 중요한 건 이 두사람이 사랑을 대화로만 주고 받는 걸 보고 루비가 방을 비워주며 하는 말이다.


첫째, 문 좀 닫아, 추워! 둘째, 입들 닫아, 추워! 아무리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뭔 다이아 주머니에 쟁반에 다 들린다고. 연인이 속닥거리는 소리는 도저히 못 들어주겠어. 아무래도 밤새 시끄러울 거 같으니까 난 아버지랑 자야겠어.


루비 덕분에 두 사람은 용기를 내 서로에게 다가간다. 서로를 잘 알게 되면 상상으로 존재했던 사랑이 부서져 버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원래 사랑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미 알고 있던 사이여도 막상 만나보고 같이 살아보면 잘못 알았다고 생각하기 일수이다. 그래도 사랑은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얻거나 쟁취하는 게 아니라 잠시 빌리는 걸지도 모른다. 빌린 건 돌려주기 전의 상태를 알아야 그대로 돌려줄 수 있기에, 사랑을 할 땐 잘 알지 못하지만 서로를 강렬히 원했던 처음 상태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도 다시 사랑을 주고받으며 거래를 이어나갈 수 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상태로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인만과 에이다의 사랑이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두 사람이 서로의 첫인상을 평생 기억할 거라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독/각본 앤서니 밍갤라, 배우 니콜 키드먼, 주드 로, 르네 젤위거, 나탈리 포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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