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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아 Jul 13. 2024

상실, 남아있는 고통에 대하여#10

나의 생일

10. 나의 생일


아침 일찍 울리는 내 생일 알람을 껐다. 나만 보기로 바꿔놓았다.

오늘은 아이들 학교에 '책 읽어주는 엄마'로 두 달 만에 나가는 날이다. 학교에서 올해 초부터 매주 목요일 각반의 아이들에게 엄마들이 책을 읽어주는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시우가 6학년이라 5,6학년반에 들어갔다.
우리가 여행 가기 바로 며칠 전에도 시우 반에서 책을 읽어 주었다. 그 수업 때 고른 책을 집에서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할 때였다. 모른 척 방에서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시우가 다 읽고 났더니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것 같다고 나를 독려했었다. 엄마가 자기 반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좋기도 했었던 것 같다. 확실하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랬을 것 같다. 약간 어색해하면서도 뿌듯해했으리라...
이번에 학교의 사서 선생님께서 한비가 있는 3, 4학년으로 바꿔서 활동하는 건 어떻겠냐고 하셔서 고민하다가 수락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와서 1층 현관에 있는 아이들의 신발장을 지나 학급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니 갑자기 울컥하며 마음이 동요되었다. 시우가 6년 동안 아이들과 쉴 새 없이 올라 다녔던 이 계단들... 교실... 갑자기 또 목이 꽉 매어 온다. 하필 오늘 들어가는 3-4반의 담임 선생님이 시우 3학년 때 담임이었던 분이다. 시우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학년 끝날 때는 시우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미혼의 여선생님. 그 선생님 얼굴을 보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걱정도 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온갖 맘이 교차하며 마음이 심란해졌다.

차마 시우 친구들이 있는 반은 못 들어가겠다고 생각했어도 학년이 다른 아이들 반에 올라가는 건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학교 교실에 올라오니 마음이 요동친다.

교실 문 앞에서 마주친 선생님께서 "시우 어머니~"하고 불러주시며 눈인사하며 나가시는데 잠시 또 눈물이 스친다.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들과 인사하고 준비된 책을 읽고 나왔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집중해서 잘 듣고 재미있다고 해서 안도했다.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너무도 빈번히,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지리 않고 나를 찾아온다.
눌려있던 감정의 줄기에 무언가 닿을 때면 그것이 비록 아주 미미한 것 일지라도 단숨에 나를 흔들어버린다.
그것은 일상에서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생일 알람을 껐어도 어딘가에 퍼져있는 나의 정보가 등록된 곳에서 계속해서 알람이 온다. 문자도 오고 쪽지도 오고 연락들이 계속 온다.
함께하지 못하는 이 많은 기념일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생일도 이렇게 아픈데 우리 시우 생일은 얼마나 슬플지,,,
이제는 시우를 보낸 기일이란 것도 생겼다.

작년 내 생일날 시우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서 모카빵을 사가지고 왔었다. 호두파이를 사려고 했는데 없어서 엄마가 커피를 좋아하니깐 모카빵을 샀다고 했다.... 엄마는 커피는 좋아해도 크림이 있는 모카빵은 안 좋아하니깐 올해는 꼭 호두파이를 사라고 했었다....
그날 말을 그렇게 했지만 기특했고 참 기뻤었는데....
오늘은 시우가 환하게 웃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더 그립네... 너무 보고 싶고....

나는 급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시우가 게임을 중계하는 음성 녹음을 튼다. 시우의 목소리, 웃음, 장난스러운 말투, 마지막 인사말까지... 저 생생한 목소리를 내는 우리 아들이 지금 없다니...  이제 학교에서 돌아와서 배고프다고 엄마 어디 있느냐고 전화하지 않는다니...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서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니.... 밤마다 이부자리에 누워서 이불을 밀어놓고 two(이) fire(불) cover(덮다)해주세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매일밤 엄마를 귀찮게 했던... 웃게 했던 네가 없다니...  엄마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녁엔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한비와 셋이 외식을 했다.


음식을 유독 맛있게 먹던 시우의 행동 자체가 얼마나 큰 시너지였나 싶었다.


맛있던 음식도 별 맛이 없고 특히 오늘 같은 날엔 더 흥이 나지 않아서인가... 음식이 줄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 시우였으면 이 음식들을 얼마나 맛있게 먹고 더없이 행복해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돈다.


시우야, 엄마는 요즘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많은 기회들'에 대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후회해.



시우가 좋아하던 야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려고 노력해 볼걸...  매일아침 잔소리로 전쟁을 치르고 너희들을 학교에 내려줄 때 그래도 사랑한다고 얘기해 줄걸... 밤마다 이불을 덮어 달라는 너의 어린애 같은 요구를 좀 더 기쁘게 받아 줄걸... 이불을 덮어주고 꼭 안아주고 뽀뽀해 줄걸.... 좀 더 칭찬하고 웃어 줄걸... 한참 크려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너에게 귀찮아하지 말고 즐겁게 맛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줄걸... 우리가 태국에 출발한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 직전에 온전히 함께했던 시간들 동안 많은 이야기와 행복한 웃음을 많이 만들지 못한 엄마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앞으로는 그런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시우도 엄마를 위해 기도해 주렴...


2016년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당시 2년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기일이 8주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써내려 갔던 피투성이였던 나는 시간이 처방하는 어느 정도의 망각을 통해 상흔을 남길지언정 흘리던 피는 서서히 멈추고 상처는 단단해진 채 상실의 아픔도 나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다고 지금도 이렇다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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