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내게도 노안이 왔네요
2년 전 노안 때문에 처음 맞춘 돋보기로 핸드폰과 책글씨가 잘 안 보이기 시작한 지가 꽤 한참 전이다. 가속화된 노안을 인정하기 싫어서인지 불편함을 감수하며 계속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집 근처 안경점으로 향했다.
안경테를 정찰제로 판매하는 체인으로 된 안경점에 들어갔다.
렌즈만 바꾸려다가 3만 원짜리 안경테를 하나 골랐다. 처음 맞춘 돋보기안경 2개는 모두 1만 원짜리 코너에서 고른 안경테였다. 들고 다니기 싫어서 집에 하나 회사에 하나씩 두고 사용했었다.
"지난번에 돋보기를 맞추고 2년 만에 오셨으니 많이 불편하셨겠네요"라고 안경사가 말하며 종이를 건넸다.
"보통 노안의 시력 저하가 어느 정도의 텀으로 오나요?"나는 종이를 받으며 물었다.
"지금 불편하실 시기가 지났을 것 같네요. 기존 맞추실 때 메모에 어지러움으로 도수를 낮춤으로 적혀있어요."
안경사가 건네준 종이엔 몇 가지 크기의 작은 글자들이 단락을 나누어 있었다.
시력 검사 후에 괜찮은지 써보라고 준 안경을 쓰니 눈앞의 작고 뿌옇고 아른거렸던 글자들이 구름 걷히듯 꽤나 화창한 하늘처럼 선명히 보였다.
나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하고 내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이버 화면 안의 글씨가 너무 깨끗하고 예쁘게 잘 보인다.
'라식 수술한 사람들 느낌이 이런 건가' 세상이 맑고 밝고 깨끗하게 보인다.
안경을 쓰던 남편이 20대에 라식 수술을 하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기뻐했던 때가 떠오른다.
안 보여서 답답한 것들이 보일 때의 쾌감이 뭔지 몰랐던 나는 그것이 이제야 뭔지 알게 됐다.
처음 돋보기안경을 맞췄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땐 썼다 벗었다 하기가 귀찮아서 잘 쓰지 않았다.
"네, 잘 보이네요. 이대로 할게요."
"요즘엔 다초점 렌즈처럼 핸드폰 거리(30cm)와 pc거리(60cm)까지 확장되는 노안렌즈가 있는 데 사용하시는데 더 편하실 거예요, pc를 많이 사용하시나요?"
"괜찮습니다. 이대로 할게요."
눈앞의 핸드폰만 잘 보여도 너무 편한 나는 추가금 없는 이 렌즈로 해달라고 했다.
이미 잘 안 보였던 눈으로 오랫동안 핸드폰과 컴퓨터를 보다가 노안 시력에 맞는 돋보기 렌즈를 끼니 세상 편했기에 이보다 더 편할 필요는 아직 없었다.
최근에 핸드폰 글씨나 책의 글씨는 거의 두 겹으로 보여서 그냥 대충 글씨를 짐작해서 읽었다.
카톡의 글씨를 크게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던지...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침실방의 조도에서는 보고 싶어도 핸드폰을 볼 수 없었다. 안보였다.
13부터 시작하는 카톡의 글자크기를 15까지 키웠는데 더 이상 크게 하는 건 정말 노안이 아니라 노인이 된 것 같아서 못 바꾸고는 안 보이는 불편함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 사이 내 노안 시력은 급속히 안 좋아졌을 것이다.
특히 나보나 양안 시력이 비교도 안되게 낮은 남편도 노안은 별로 심하지 않아서 카톡 글씨 크기가 젤 작은 크기였다.
나는 팔을 최대한 뻗쳐 멀리 뒤로 보내야 간신히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글씨들이 자기는 잘 보인다고 정말 안 보이냐며 신기하다며 나를 놀렸다... 할머니 다 됐네^^
그렇게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니 카톡을 보낼 때도 오타가 정말 많아졌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창피할 정도다. 우리 엄마가 언제부턴가 문자에 그렇게 오타를 내기 시작했던 때가 내 나이였던가... 나보고 바늘에 실을 꿰어 달라 하시던 때도...
2년 전 처음 돋보기를 맞출 때는 약간의 근시 교정용 렌즈를 넣고도 고개를 들면 확 어지럽고 시야를 조금이라도 멀리 두면 시력이 맞지 않아서 바로 안경을 벗어야 했다. 그래서 핸드폰에서 pc화면으로만 시선을 옮겨도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 맞춘 돋보기를 끼고도 핸드폰의 글자가 흐릿하고 초점이 맞지 않아 눈이 계속 피로했고 그나마 흐린 날은 책 글씨가 더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거실의 led등을 전부 키고 있으니 남편이 왜 이렇게 조명을 눈 아프게 환하게 키냐고 묻기도 한다. 바늘에 실이라도 끼워야 하면 바늘귀는 어디인지 아예 보이지 않아 나의 직감으로만 바늘에 실을 끼우는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그마저도 안 끼워질 때는 정말 화가 나기도 했다. 자동 실 끼우기 바늘이라는 것을 보고 사려고도 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최초의 맞춤 돋보기를 끼고 핸드폰은 잘 안 보여도 TV를 보고 집안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 돋보기 시력이 양안 시력 떨어진 정도가 되었나 보다.
40년 이상을 눈으로 무엇인가 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이 살던 나에게 어느 날 찾아온 노안이라는 손님은 어떤 노화보다도 내가 육체적으로 늙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나에게 노안은 30대만 되어도 여자들에게 찾아오는 얼굴의 노화를 보여주는 탄력을 잃은 피부나 얼굴에 생기는 잔주름나 팔자주름, 턱주변의 불독살, 쌍꺼풀 처짐, 눈주위 노화 등 외모에서 오는 노화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졌고 나이 듦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뒷모습으로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 때 뒤에서 잠시 그 사람의 핸드폰 화면 안의 글씨 크기를 보라. 그러면 그 사람의 나이를 어느정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모는 나이보다 많이 젊어 보일 수 있지만 50대 이후라면 노안을 이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나이듦에 관한 것보다 왜 유독 이 노안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까 생각해 봤다.
육체적 노화를 막을 수 있는 어떤 노력들이 노안에는 통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 9월이 되면 만 47세인 나는 재작년까지 건강 검진 양안 시력은 1.5 / 1.2였고 작년엔 조금 떨어져서 양쪽 1.2가 나왔다.
보통 여자들은 출산 후에도 시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도 시력의 변화가 없이 눈이 너무 좋았다. 고등학교 때 버스 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를 멀리서 몇 번인지 알려주는 나에게 아이들은 소머즈(시력과 청각이 뛰어난 여자주인공)라고도 했다.
올해는 좀 더 떨어져서 1.0 정도 나올 것 같다. 노안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양안 시력도 확실히 떨어져 간다.
그래도 양안시력은 노안에 비하면 현저하게 좋은 편이다. 멀리 있는 작은 글자들은 다행히 아직도 아주 잘 보인다.
나는 요즘 노안으로 인해 눈으로 봐야 할 무엇인가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평생 안경을 끼지 않고도 시력이 좋았다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확실히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