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xxxx년 xx월 xx일, xx시 xx분 지구가 멸망한다.' 이런 기사가 뜰 때마다 댓글엔 "가자 가자! 멸망 가자." 하는 말들이 우수수 달려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살기는 팍팍했고 이대로 살면서 나만 망하는 것보단 다 같이 망한다는 말이 조금 덜 무서웠으니까. '펑' 하고 한 번에 터져버린다면 고통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손꼽아 그 날을 기다렸지만 막상 예견된 시간과 날짜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똑같은 날이었을까.
2020년 코로나가 발병되면서 환경 문제들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 전까진 봄마다 오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성일 때 혹은 몇 년 만에 한 번 온 폭염 때나 잠깐 느낄 뿐이었다. 그렇지만 마스크를 한 몸처럼 챙기고 다녀야 했을 때 나는 비로소 갑갑해졌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코로나가 쉽게 끝나지 않자 코로나로 인한 환경에 문제에 대한 기사와 기후위기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왔다. 나는 일일이 그 기사들을 클릭해 보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했다. 자꾸 혼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에서도 2장을 읽을 때 가장 많이 뜨끔했다. 나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나 중국 탓을 많이 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와 미세먼지를 보면서 우리나라만 아무리 재활용하고 환경 생각을 하면 뭐하냐고 저 큰 나라들은 위기의식이 없는데 우리만 그런다고 바뀌는 게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음식에 비해 비건 음식이 유독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다. 희소성과 만들기 까다롭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지갑을 열어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머뭇거리며 원래 먹던 저렴한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작년 말, 나는 몇 주에 걸쳐 방 청소를 했다. 대략 15년 동안 쌓인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엄마는 정리를 하면서 “이게 다 얼마야”라는 말을 했고 나 또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 물건들은 추억이라기보다 그냥 쓰레기였다. 어떻게 버려야 할지 앞이 캄캄한 오래된 쓰레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변한 점은 기후위기 문제에 있어서 이게 왜 나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산 것들, 소비한 것들은 지구를 아프게 했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지구는 숨을 잃었다.
작년 겨울은 매미나방의 알들이 살아남을 만큼 따뜻했고 올해 겨울은 놀라울 만큼 눈이 많이 내린다. 지구의 종말은 자고 일어나면 쿵하고 모든 게 사라져 있지 않다. 서서히 우리를 조여 오면서 고통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