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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an 20. 2021

20. 어떤 여리여리한 병

내가 가장 아팠을 때

나는 갑상선 항진증에 걸렸다. 언제 처음 이 병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단지 내가 살이 쪄서 목도 부은 거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방치했다.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너 그거 갑상선 같아, 이모도 있어서 알아."라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무려 2년 가까이나 그대로 두었다. 그 사이에 나는 살을 좀 뺐다. 그러나 목은 여전히 사과 하나가 들어있는 것처럼 부어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갔다. 역시나 갑상선이었다.


처음 병원에 가서 병을 확진받고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 메티마졸 처방받았다. 그걸 하루에 여덟 알씩 먹었다. 약을 먹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냥 물과 함께 꿀떡꿀떡 삼키면 되었다. 갑상선은 내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고 손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약엔 부작용이 있었다. 정수리에도 담이 올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병을 몸에 지니고 살았지만 내가 가장 아팠을 때는 갑상선에 걸렸을 때가 아니다.


몇 년 전, 내가 연애할 때, 나는 그때 가장 자주 아팠다. 정말 아팠나?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조금만 머리가 지끈거려도 그에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렸고, 그럼 걔가 놀라거나 걱정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마치 내가 여리여리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하지만 난 그걸 몰랐다. 너무 자주 아프다고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아프다는 내 말에 그는 점점 무뎌지고 무심해졌다. "그럼 오늘은 일찍 자." 그게 다였다. 그 말에 나는 더욱 불안해졌고, "아프다니까? 내가 아프다고."라고 징징댔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정말 더 많이 아픈 것 같았다. 이 증상은 그와 헤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분명 잘한 게 없다. 아프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냥 던져본 거였다. 왜 그렇게 나는 여리여리한 존재가 되고 싶었을까. 왜 보호받고 싶었을까.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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