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애쓰지 않아도 강해진다. 가령, 그림을 그릴 때 어려움이라는 마음이 그렇다. 조금의 선을 그리면 선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이 피어오른다. 색을 칠할 때면 색보다 더 진하게 마음이 칠해지곤 한다. 마음 속으로는 '즐기면서 하는 거야.' 라고 대뇌여본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에 칠해진 선과 색이 옅어진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 시선을 옮기게 된 것인지 모르게 다시 그림에 집중하게 됐다.
그러다 여름이 왔다. 마치 그림을 그리다 밖을 보니 비가 내리는 것처럼. 창문을 열자 눅눅한 향기가 얼굴에 닿는 것처럼. 그렇게 여름은 한 순간에 찾아왔다. 냉방 시설로 차가워진 피부도 그렇다고 눅눅한 여름의 맛도 싫은데, 여름은 그런 마음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런 내가 여름에게 실증을 내봐야 무슨 소용일까. 이 마음이 짝사랑과 뭐가 다를까. 마음을 포기하지 않은 건 내 쪽이었다.
'즐기면서 하는 거야.'
눅눅한 이 공기도, 날카로운 에어컨의 바람도, 어쩔 수 없다면 차라리 좋아한다고, 차라리 사랑해버리자고.
그럼 이 곳의 승자는 누구일까. 여름 너일까. 아니면 너마저 사랑한 나일까. 어떤 마음은 이렇게도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