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음악인으로 산다는 것 #3>
그렇게 가정과 음악을 동시에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 이제는 연주자의 삶을 그만두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고통스럽게, 지속적으로 하던 때에 우연히 보게 되는 문구가 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그럼에도 갈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 어떠한 절박한 상황이 다가오면 그것이 내 길인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 그 순간 정녕 포기할 수 없다면 그때부터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미쳐야 한다. 미쳐서 그것이 과정인지 성공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 그 열정의 순간만이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성공 아닐까”
ㅡ화가 김동유 <그림꽃, 눈물밥> 중에서-
바로 화가 김동유의 책 '그림꽃 눈물밥'의 내용이었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스크랩해놓은 거였는데, 안타깝게도 그책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화가의 삶이나 음악인의 삶이나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구였기에 나의 생각이 정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 아! 무슨 일이 있어도 음악을 놓아서는 안 되겠구나!”
그런데 앞편의 글들을 읽으신 독자들은 눈치채셨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음악인’과 ‘연주자’라는 말을 혼용해서 썼다는 것을.
왜 그런고 하니, 내 마음속으로 이 콘셉트를 확실히 이해하고 마음이 정리된 때가 이 문구를 만났을 때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음악을 해야 한다”는 곧 “연주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약간 어렸을 때부터 높은 수준의 연주를 막 빨리 배우는 그런 교육에서 비롯되지 않았으려나 생각한다.
음악인이 되려면 예술학교를 나와야 하고, 나오고 나면 전부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 같은 거 말이다. 그 정형화된 틀이 아니면 음악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깨기가 참 어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던 거라 말 할 수 있겠다.
‘연주자’ 말고도 좋은 ‘음악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사실 많다. ‘연주자’보다 ‘음악인’이라는 말이 더 상위 카테고리의 단어인데, 이는 음악인’ (Musician) 보다 ‘예술인’(Artist)이 더 큰 범위의 뜻을 담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그래서 내가 ‘엄마 연주자’ 대신 ‘엄마 음악인’으로 살면서 ‘놓아야 할 것’들과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 해 보았는데,
놓아야 할 것은
-음악인은 세계적 연주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전공자만 가르쳐야 한다는 나의 자존심.
-‘난 이런 수준 음악만 하는데? 내 연주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음악인이 아니라는 교만에서 비롯된 편견.
놓지 말아야 할 것은
- 나의 음악과 가정에 대한 사랑
- 나의 음악인으로서의 열정
- 나의 음악에 대한 기준.
- 그 높은 기준이 (하향평준화가 아닌) 대중의 음악에 대한 수준을 이끌어 올리는데 기여하도록.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분명히 하고 이때부터 내가 나의 가정과 이 사회에 음악을 통해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내 명예, 내 돈만이 다가 아니라, 내가 아는 이 음악의 가치를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인가 말이다.
‘연주가 아닌 음악의 또 다른 방식도 괜찮다’
스스로 되뇌면서 말이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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