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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쌤 Jun 23. 2024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

*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 외에 각색은 거의 없습니다 :)


얼마 전까지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짜증을 바락바락 내던 딸이 결혼한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시지는 않을까. 아무렴 결혼 안 해서 골칫거리이던 딸이 결혼한다고 하면 좋아하시지는 않을까.


나는 떨리는 마음, 설레는 마음 반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 하고 있어?"

"응, 아빠랑 화훼단지 가서 다육이 좀 사 오려고 가는 중이지. 뭔 일 있니?"


엄마는 몇 해 전부터 식물 키우기에 푹 빠져있다. 엄마는 거실 전체를 다육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로 가득 채워두었다. 엄마 바라기인 우리 아빠는 그녀의 취미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주말마다 함께 화훼단지에 가거나, 흙을 나르거나, 새로운 품종을 주문하느라 함께 분주했다. 


"엄마, 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니?"

"나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좀 이르지만 결혼하고 싶어."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멀리서 아빠가 "겨얼호온?"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혼 안 하겠다고 난리를 치더니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뀐 거니? 누군데?"

"아,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고 친구 소개로 만났고.. 0000 다니고 음... 부산 사람이야."


엄마는 아빠와 함께 질문 폭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성격은 어떤지, 혹시나 나쁜 버릇은 없는지, 온화한 사람인지 등등. 나는 부모님의 질문에 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치 2:1 면접을 방불케 하는 몇 분간의 전화가 이어졌다.


"네가 좋다면 결혼하는 거지. 그래도 결혼 전에 집은 꼭 가봐야 해. 부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꼭 봐야 해."


남편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일까? 드라마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시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남편이 좋다지만 과연 힘든 시집살이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불현듯 나이 많은 기혼 선생님들의 충격적인 시집살이 썰들이 떠올랐다. 나는 머릿속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상황들에 대해 떠올리다 몸서리를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시부모님과의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시부모님께서는 참 좋은 분들이셨다. 어머님께서는 끊임없이 내게 고마워하셨다. 연애도 통 안 하고 결혼을 할는지 마는지 속을 알 수 없던 아들이 결혼한다고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데려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둘이 행복하면 그만이니 우리 신경은 쓰지 말고 실컷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당신은 좋은 시어머니를 만나 행복했기에 나에게도 잘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님 또한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와서 기쁘다며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짧은 식사를 마치고 시부모님께서는 우리더러 얼른 놀러 가라고 하셨다. 걱정이 한가득 되었던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도 우리 시부모님은 그때와 다름없이 우리에게 잘해주신다. 그리고 어떤 간섭도 하시지 않는다. 얼굴 한 번 보자, 밥 먹자는 말씀조차 없으시다. 심지어 내 핸드폰 번호도 궁금해하시지 않는다. 아직도 신혼집에 양가 부모님 모두 와보신 적이 없으니 말 다했지 않는가. 양가 부모님 모두 활발히 경제 활동을 이어가셔서 그런지 크게 우리 삶에 관심이 없으시다. 나는 역시 사람은 돈이 적든 많든 자기 할 일을 언제나 충실히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맞벌이하는 부모님께 서운한 적이 많았다. 공개수업, 운동회 등 모든 굵직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부모님은 바쁘셨다. 두 분 다 교직에 있으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일 욕심이 남다른 분들이라 승진 준비까지 하셨으니 나는 언제나 학교-학원-학교-학원을 반복하며 외로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조금 크고 나니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나는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하나의 일에서 정점을 찍은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달려왔던 우리 부모님의 모습은 내게 좋은 롤모델이 되었다. 이중섭, 김환기 작가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장욱진 화백은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좋은 인간이 되고자 애쓰면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된다."라고 하셨다. 나만 바라보았던 부모님이 아니셨기에, 나는 더 단단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시부모님께서도 마찬가지다. 두 분 다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지만 아직도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좇고 계시다. 시어머니께서는 뒤늦게라도 일을 하셔서 행복하다고 하셨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일에서 오는 충만감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일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며 웃음 짓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렇게 열심히 구나 싶다.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해지는 요즘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해볼까?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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