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A쌤 Jun 24. 2024

이런 남자를 기다려왔어

*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 외에 각색은 거의 없습니다 :)


결혼을 위한 가장 큰 산은 넘었다.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론 우리 부모님께서는 처음에 걱정이 많았으나 남편을 만나본 뒤로는 안심하시는 것 같았다. 교직에서 오래 일하면 반무당이 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렴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한 우리 부모님 눈에 든 남자는 괜찮은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편의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셨다. 오히려 우리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결혼 승낙의 과정이 쉬운 것이었나. 아무튼 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큰 산을 쉬이 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미 결혼 준비 과정의 괴랄함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식장 예약, 드레스투어, 스튜디오 촬영, 집 구하기, 혼수, 신혼여행 등등 신경 써서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엄청나게 싸운다는데 과연 우리는 잘할 수 있을까?


"우리 만약에 결혼 준비하다가 왕창 싸우면 어떡해?"


나는 결혼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문득 남편에게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딱히 그럴 일 없을 것 같지만 싸우면 싸우는 거지 뭐."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갈등을 나보다 훨씬 싫어하는 사람이다. 웬만하면 싸우고 싶지 않아 다 맞춰주는 쪽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하다니!


"엇, 오빠 싸우는 거 되게 싫어하지 않아?"

"좋아하지는 않지. 그런데 생각이 좀 달라졌어."

"어떻게 달라졌는데?"


그가 나를 끌어당겨 꼭 안았다.


"나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싸우기 싫다고 참고만 있으면 네가 얼마나 힘들겠어?"


그가 가만히 내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난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 내가 잘하면 싸울 일이 뭐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사람이 화내면 이유가 있겠지."


나는 가슴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목이 매이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비난하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언제나 남 탓보다는 내 탓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내 잘못이 아닌 일도 누군가 내 탓이라고 말하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내 탓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간혹 내 분에 못 이겨 그에게 미운 소리를 하고 금방 후회하고는 했지만, 그는 그 흔한 실언 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자신이 변하면 그만이다, 너는 잘못한 게 없다 -라고 말해왔다. 


그는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평생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 잘해야겠다 싶더라. 예의를 지킨달까."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나는 남편을 꼭 안았다. 그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것처럼. 평생 볼 사람이라 더 잘하고 싶다는 남편의 말이 한없이 고마웠다. 나는 다시 한번 이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사려 깊은 말과, 믿음직스러운 행동, 올바른 생각 앞에 나의 불안은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결혼 준비라는 거대한 괴물과 싸워야 하지만 이 사람과 함께라면 겁날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맞다, 반품 안 됩니다, 안 돼요!"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장난스레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물론이지. 오빠는 이제 평생 나랑 함께야."


내가 의기양양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렇게 멋진 남자를 놓아줄 수는 없지.


(다음 편에 이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