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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쌤 Jun 27. 2024

T 남편과 드레스투어 하기 (1)

*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 외에 각색은 거의 없습니다 :)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공주님 놀이를 하는 날, 바로 드레스 투어 날이다.


나는 사실 그렇게 까지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나만의 특별한 결혼식을 하고 마리라는 환상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게 귀찮아졌다. 식장, 스드메, 청첩장, 신혼여행 등등, 주변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고 듣다 보니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만사 귀찮아하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식도 올리지 않고 가족끼리 밥만 간단히 먹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눈치에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충대충 끝내야지 라는 마음가짐과 달리 한 번 시작하니 이왕 하는 것 대충 하기가 어려웠다.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행사인데 얼렁뚱땅 끝내버리면 언젠가는 후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를 보러 먼 길을 온 지인들에게 대접을 잘해주는 것이 도리이지 않을까. 나는 남편과 함께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결혼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 첫 번째 노력의 일환은 바로 드레스 고르기였다. 이건 사실 하객들에게 크게 기억이 남는 부분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어색한 표정으로 뚝딱거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날의 주인공인 만큼 가장 빛나는 모습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처럼 드레스 샵을 적어도 3개는 들러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뽑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어떻게든 가벼운 몸으로 드레스를 입기 위해 그 전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샵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달랐는데, 피부 표현부터 눈 화장까지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샵 원장님은 나를 광이 나는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녀로 만들어 주셨다.


남편이 화장을 다 한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너무 예쁘다. 화장 옅게 하는 게 훨씬 잘 어울리는데?"

"앗, 그런가? 평소에 좀 진했어?"

"입술이랑 눈? 눈두덩이? 색깔이 좀 진했던 것 같아. 여보는 아무것도 안 발라도 예뻐."


남편은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아한다. 화장 한 얼굴보다 맨 얼굴을 좋아하고, 한껏 꾸민 모습보다 추레하게 입은 나를 더 귀여워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기껏 각도 맞춰서 예쁘게 찍어서 보내도 웃기게 나온 사진을 훨씬 좋아했다. 최근에 남편이랑 밤마다 야식을 먹어서 뚱하게 부풀어 오른 뱃살마저 귀엽다고 빼지 말라고 말했으니.. 어쩌면 그는 취향이 좀 특이한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우리는 곧장 첫 번째 드레스샵에 도착했다. 첫 번째 드레스샵의 외관은 나쁘지 않았다. 4~5층쯤 되어 보이는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건물을 올라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았다. 왠지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곧이어 실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우리를 맞이했고, 드레스 피팅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우선 인스타그램으로 찾은 드레스들을 보여드렸다. 우리가 결혼할 식장은 어둡고 화려한 곳이었기 때문에 드레스 역시 비즈 드레스로 골랐다. 하지만 비즈만 입어 보면 아쉬우니 실크 디자인도 몇 가지 골랐다. 직원들은 드레스를 찾아오겠다며 나가며 내게 웨딩브라와 가운을 입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어색하게 가운을 걸치고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곧이어 직원들은 자신들의 몸보다도 큰 드레스를 한 무더기 가져왔다. 그리고 드레스 하나를 낑낑대며 꺼내더니 바닥에 도넛모양으로 내려놓았다.


"신부님, 이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들은 드레스 도넛의 가운데를 가리키며 내게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혹시나 드레스를 밟지 않을까 걱정하며 아슬아슬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드레스를 쑤욱 올리고 팔을 끼워 넣었다.


"신부님 이제 코르셋 조일 거예요! 너무 아프면 말씀해 주세요."


직원 둘이서 내 드레스 뒤에 있는 끈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흐헉"


직원들이 어찌나 세게 허리를 조였는지 숨쉬기가 어려웠다. 이러다 갈비뼈 부러지거나 숨이 멎는 거 아니야?


"신부님 드레스투어 첫 샵이시죠? 코르셋 처음 조이는 거라 그래요. 차차 적응되실 거예요."

"ㄴ... 네"


나는 겨우 대답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코르셋 조이는 드레스만 입고 살아야 했던 시대의 여자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가끔 갈비뼈 몇 대는 부러지며 살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갈비뼈 몇 대를 제거했을까?


"신부님 너어어어무 아름다우세요! 세상에 공주님이네요!"

"메이크업도 받고 오신 거죠? 너무 예뻐요."


직원들이 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며 호들갑을 떨며 칭찬을 했다. 원래 드레스투어 가면 직원 분들이 리액션을 기가 막히게 한다던데 그래서 그런 건가. 나는 거울을 보며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찬찬히 보았다. 반짝거리는 비즈에 오프숄더 디자인이었다. 예쁘기는 한데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는 디자인이었다.


"신랑님, 신부님 나오십니다!"


커튼이 확 젖혀졌다. 남편이 나를 보며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어떠세요, 신랑님?"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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