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 외에 각색은 거의 없습니다 :)
"결혼할 사람은 느낌이 온다더니 진짜더라고. 오빠는 어땠어?"
나는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뭔가 진지하고 엄청난 이유가 있으니 이런 결정을 한 게 아닐까?
남편이 갑자기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엥? 이게 뭐야? 3가지라고?"
"3초."
"뭐가 3초야?"
남편이 갑자기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더니 말했다.
"너 보자마자 3초 만에 나는 그냥 결정했어. 이 여자다! 차에 타는 순간 뒤에서 빛이 났어."
"그게 뭐야, 부처님도 아니고!"
나는 차마 나도 남편 뒤에서 후광이 났다고 말할 수가 없어 부끄러운 척을 했다. 내 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지만 괜히 진심이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 볼에 뽀뽀를 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진짜야. 그리고 목소리랑 말투가 참 좋았어. 나는 처음에 네가 천사인 줄 알았다니까. 화도 낼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어. 지금은..."
"지금은?"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한 성깔 하지 아주 그냥."
"그래서 싫어? 싫어?"
나는 남편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남편이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어어, 하지 마라~'라고 말하며 내 손을 탁탁 쳐냈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남다른 민첩성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자였다. 내가 슬쩍 나타나서 장난이라도 걸려고 하면 꼭 손으로 다 막아내고 재빠르게 피하고는 했다. 내가 얄밉다는 듯이 쳐다보면 으스대는 표정을 지었더랬다. 그리고는 꼭 하는 말이 있다. "나 롤 마스터였어~" 역시 남자들의 게임 부심이란!
"참 우리 이번 주에 식장 알아봐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
"음, 예식장에 전화를 걸어봐야 하나? 아는 예식장 좀 있어?"
"음 글쎄, 친구들이 많이 한 식장은 알아. 0000이라고..."
"어? 나 그 식장 이름 많이 들어봤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도 거기서 많이 하는 것 같더라."
"오 그럼 전화해 볼까?"
남편이 핸드폰을 꺼내 예식장의 번호를 찾더니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너 전화하는 거 무서워하니까 내가 할게."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던 남편은 긴장했는지 버벅거리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와 친구들과 있을 때는 부산 사투리를 걸걸하게 쓰다가도 가게 점원이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아주 어색한 서울말을 구사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어를 서툴게 말하는 것처럼 더듬더듬 말하는 게 참 웃겼다. 지금도 상담원과 통화하며 어색한 억양을 구사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그래도 어찌어찌 예식장으로부터 상담 날짜를 받아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상담 날짜는 잡았어. 이번 주 주말이야."
남편이 머쓱해하며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좀 해보고 오겠다고 했다.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말하면 다들 놀랄 것 같으니 가장 먼저 친한 00 이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 공유를 하고, 그다음 예전에 결혼한 아는 형에게 결혼하는 법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했다.
나 또한 이렇게 중요한 일을 갑작스럽게 처리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기에 상담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 먼저 알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제야 부모님 생각이 났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우리 정말 서로에게 푹 빠져있었구나, 싶었다. 과연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남편의 부모님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 전까지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짜증을 바락바락 내던 딸이 결혼한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시지는 않을까. 아무렴 결혼 안 해서 골칫거리이던 딸이 결혼한다고 하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나는 떨리는 마음, 설레는 마음 반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닥쳐올 폭풍을 모른 채..
✔덧 : 저는 절세 미녀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