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Vacation] 서른세 번째
※ 더웨이브컴퍼니는 서울을 떠나 강릉, 사무실에서 벗어난 해변, 그리고 로컬에서 일하고 활동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지역 그리고 일과 휴가, 워케이션에 관한 저희의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본 워케이션의 성지이자 거점 오피스가 가장 잘 갖춰진 도시로 알려진 가미야마. 일과 휴식, 업무방식과 워케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는 저희 더웨이브컴퍼니에게 있어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지난 2월 20일에서 23일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일본 로컬 탐방(인사이트 투어)'에 2021년 청년마을 대표로 더웨이브컴퍼니의 최지백 대표가 참가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청년 마을, 워케이션, 로컬 크리에이터, 신중년 마을, 인구감소지역 대책, 지역 소멸 대응기금, 고향사랑 기부제 등 다양한 키워드가 정책에 반영되면서 청년, 취업, 지역 활성화와 지역소멸문제,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이웃 나라 일본도 비슷하게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수도인 도쿄로의 인구 집중과 과밀화, 지역의 인구감소와 지역 소멸에 관해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양한 제도와 방법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 콘텐츠를 통해 3박 4일간 투어에서 일본 가미야마를 둘러보고 온 이야기와 저희만의 시선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간사이공항에서 가미야마까지
이번 인사이트 투어에 참여한 최지백 대표는 여러 번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후쿠오카, 오사카, 교토 등 일본의 대표 도시들을 짧은 기간 동안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투어가 조금 더 특별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간사이공항을 나와 가미야마까지 가는 길에는 산과 바다, 섬과 같은 자연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도시를 벗어나 일본의 작은 마을들과 고속도로 휴게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를 닮은 산과 푸른 동해를 닮은 바다를 일본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이전에 일본 워케이션을 소개한 글에서 가미야마의 성공사례에는 '민간 기업과 지역 주민, 지방자치단체의 협업이 유기적으로 잘 이뤄지는 데 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도 가미야마에서 운영 중인 가미야마연대협동조합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는 시골 학교의 대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조금 쌀쌀했지만 참가자들의 열기로 이를 녹이는 듯했습니다. 노란 불빛을 내는 등유 난로와 화장실에 놓인 게다(나막신)가 눈에 띄었습니다.
강의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가미야마 출신으로 2021년부터 가미야마 연대공사로 파견되어 '마을을 미래 세대와 잇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바바 타쓰로 씨가 연사로 나섰습니다. 그는 6년간 지방 은행 근무 후 가미야마정 사무소의 공무원이 되어 지방창생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가미야마 마을의 정식 명칭은 '가미야마정'입니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우리나라의 시·도, 군·구, 읍·면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미야마의 행정구역을 살펴보면 시코쿠 섬,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은 우리나라의 '읍과 면, 동'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겁니다. 202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가미야마 정의 인구는 4,647명입니다. 2021년과 2022년 강릉의 청년마을 사업 대상지였던 강릉시 중앙동 인구가 4,918명 수준으로 우리의 '동' 정도 규모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가미야마의 지역 문제들
가미야마 마을은 면적 173㎡, 삼림률 86%, 고령화율 54.3%로 이미 지역 소멸의 위기에 처한 마을입니다. 일본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역소멸, 청년인구 부족, 고령화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은 독특하게 지역 소멸 위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1955년 20,000명 수준이었던 가미야마의 인구는 인구 유출과 감소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5,00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985년과 비교하였을 때 65세 이상 인구가 19.7%에서 52.7%로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인구 감소, 특히, 청년인구 유출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인구 조사 기관에 따르면 이런 수치가 유지될 경우, 2060년의 가미야마 인구는 1,407명 정도이고 마을의 한 학년 당 아이 수는 5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가미야마 주민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지역 소멸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강의에 따르면 가미야마 주민들은 해당 문제의 해결책으로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운다.'라는 전제를 우선 세웠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이디어란 이미 있는 것의 새로운 조합이다.', '실행할 열의와 힘이 있는 사람이 명확하게 존재할 것.'을 기본으로 삼고 지역 주민들이 합심해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마을 외부에 있던 사람들이 이주하고 싶은 마을을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들의 모습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마을'은 무엇일까요?
가미야마 사람들은 '가능성이 느껴지는' 곳에 모인다고 생각하고 사람, 좋은 주거, 좋은 학교와 교육, 다양한 근무 방식과 일, 부와 자원이 유출되지 않는 것, 안심할 수 있는 생활, 관계가 풍부하게 열려있는 것을 조건으로 생각했습니다.
가미야마 마을은 가미야정사무소(동주민센터)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연대공사라는 민간이 주도하고 관이 참여하는 가미야마연대공사라는 조직을 구성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가미야마 마을의 특성을 고려하여 목조 집합주택 프로젝트를 지역주민이 직접 짓고 목재 바이오매스를 통해 지역난방 문제를 해결, 이 모든 과정을 지역의 다양한 모임과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강의를 통해 일본에서는 지역 소멸 위기에 관한 문제 인식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많은 지역에서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한국을 보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위기의식이 크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인구 감소와 저출산, 지역 소멸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고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지만 정말 위험한가?'에 관한 인식은 아직 먼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들이 지역에 인구를 이주시키기 위한 또는 관계 인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다양한 정책들과 지원사업들로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여러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또한 가미야마의 주민들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이 크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 가미야마의 마을 환경은 한국의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 환경과 매우 달라서 가미야마에서 했던 방법이나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효용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곳 주민들 역시 외부의 성공사례를 참고하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수많은 모임과 회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와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결국 지역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의 시작이 사람이듯이 지역주민이 어떤 생각과 의지로 마을을 만들어가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워케이션을 위한 숙소와 업무를 위한 위성 오피스
가미야마에서 배정받은 숙소는 호텔선루트 도쿠시마였습니다. 최지백 대표는 "보통 밤늦게 자는 편이라 호텔에 머무르면서 조식을 거의 먹지 못했는데 일본 호텔의 조식은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침에 부리나케 일어난 뒤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제 취향인 계란과 생선 위주의 음식으로 식단이 꾸려져 남긴 음식 없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답했습니다.
호텔에 식사를 비롯해 내부에 온천 시설이 있어 인사이트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 첫날 일정을 마치고 온천욕을 즐겼습니다. 최 대표 역시 다른 청년 마을 대표들과 함께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면서 피로를 풀고 일과 삶, 휴식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둘째 날 일정은 거점 오피스를 둘러보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더웨이브컴퍼니뿐만 아니라 워케이션에 관심이 많은 참가자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최지백 대표는 바바 타쓰로 씨에게 "기업들이 다른 마을을 두고 왜 가미야마 마을에 위성 오피스를 만들게 되었나요?"라고 물었고, 타쓰로 씨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한 말에 그 답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가미야마 마을에서는 무엇인가 될 거 같은 느낌이 있다'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더웨이브컴퍼니 파도살롱의 책 연재 콘텐츠 '파도의 시선'에 언급했던 책 <마을의 진화>에서 나왔던 이야기와 같은 부분이었습니다. 일과 휴식 모두에 있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여기에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성 오피스를 만드는, 위성 오피스가 들어오는 도시의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였습니다. 더웨이브컴퍼니를 창업할 무렵 최 대표 역시 "'강릉에서는 무엇인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역에서 일하고 이주하게 되는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일자리와 연관이 있겠지만, 그 계기를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에는 '살만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여러 콘텐츠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로컬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개인의 삶의 철학과 방식,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죠.
가미야마는 인근에 도쿠시마 공항이 있고 이곳에서 도쿄 공항까지 2시간 거리이기에 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쿄로 가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여러 기업의 지역 거점 오피스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가미야마에 위성 오피스를 만든 산산 기업을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줄지어 입점했습니다. 위성 오피스를 이용하는 코워커들은 가미야마로 아예 이주를 해 주민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미야마가 위치한 도쿠시마현에는 가미야마뿐만 아니라 미나미초에도 위성 오피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많은 기업이 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가미야마는 산악 지역, 미나미초에는 해변 지역으로 저마다 특색과 기호, 비즈니스 스타일에 맞게 지역을 고를 수 있다는 이점도 존재했습니다.
가미야마는 강릉의 연곡면을 닮았습니다. 산으로 둘러싼 풍경과 소박한 동네 건물들이 떠올랐거든요. 대부분 관광객들이 강릉에서 바다를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세우지만 강릉에는 바다만큼 아름다운 산이 있습니다. 특히 연곡은 팬데믹 이전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던 곳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콘텐츠와 모습으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가미야마 투어를 마치면서
강의했던 타쓰로 씨도 언급한 부분이었지만, 이곳은 다양한 가치들을 포용하고 있고 새로운 생각과 가치가 들어오는 것에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여러 도시들을 보면 문화, 생활 등 사회 여러 부분에서 보수적으로 외부인을 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도시에서 온 외부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이 도쿄와 오사카의 IT기업,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을 가미야마로 불러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일과 휴식, 업무 방식과 워케이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워케이션,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매번 언급되는 가미야마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투어에 참여한 최지백 대표는 "'위성 오피스, 워케이션, 리모트워커들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책과 영상이 아닌 실제 공간에서도 그들이 일하고 있을까?'라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은 그 의심의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비전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드는 조직이기에 더웨이브컴퍼니의 워케이션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환경과 분위기, 공간을 갖춘 곳이라면 그곳이 대도시건, 지방 거점도시건, 소도시건 관계없이 소비자들이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릉을 포함한 강원도 여러 지역에 가미야마의 사례와 같은 위성 오피스를 만드는 것도 꿈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매번 책과 영상, 강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고 듣던 다른 나라의 워케이션과 지역 사업, 위성 오피스 시스템을 보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글 = 변준수
사진 촬영·현장 답사 = 최지백
장소 =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