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 몬테크리스토]

가장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용서와 관용입니다.

by Curtain call
냅다 최애배우로 메인 썸네일 걸기 : 이 분을 보러 다녀왔기 때문


[극 내용을 필터링 없이 감상평에 사용하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연극 뮤지컬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때에 엄기준 배우를 참 좋아했습니다.(지금도 좋아합니다) 단순히 배우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지만, 배우의 연기 스타일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노래는 특출 나게 잘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게 하고, 어린 관객이던 저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던 그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 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엄기준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잭 더리퍼와 몬테크리스토, 삼총사 같은 유럽 뮤지컬이었고 몬테크리스토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용돈을 꼬박 모아서 두 번이나 엄기준 배우 캐스팅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기억 속의 몬테크리스토는 류정한 엄기준 신성록의 아들로 전동석 김승대가 나오는 그때 그 시절인데, 어느덧 10년도 더 넘는 세월이 지나 몬테크리스토가 all new 버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더는 추억 속의 배우들은 등장하지 않고, 제 기억 속의 극 중 인물도 많이 달라져서 캐스팅부터 무대연출, 넘버, 서사와 개연성 자체까지 전부 다 뜯어고친 공연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섬세한 떨림을 가진 연기를 좋아해서, 올뉴 몬테는 김성철 배우로 관람했습니다. 가만 보면 좋아하는 배우들의 느낌이 다 비슷한 거 같습니다.


뉴 몬테의 첫인상은 프렐류드부터 남달랐습니다. 일단 제가 올뉴 몬테라는 걸 모르고 가서…첫 시작부터 제 기억 속의 몬테랑 다르길래 그때 알았습니다 아 이거 프로덕션이 바뀌었구나? 하고. 정보를 너무 안 찾아보고 간 것 같아요. 사실 그냥 김성철 배우가 보고 싶어서 간 거였습니다. 몬테크리스토 자체는 다시 보고 싶을 만큼 흥미롭지 않았어요, 옛날에 너무 많이 봐서. 기대가 워낙 없어서였기 때문인지, 올뉴 몬테를 전반적으로 참 재밌게 봤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주인공인 단테스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수정/보완하여 극의 개연성이 좀 더 촘촘해진 점이었습니다. 대극장 뮤지컬 특유의 전개가 좀 급진적 이어 보여도 그러려니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 없이 최대한 인물 하나하나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고쳤더라고요. 특히 초반부에 추가된 펜, 잉크, 종이..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인물들이 단테스를 왜 눈엣가시처럼 여기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부연설명이 되었고, 익명의 고발장에 대한 부분도 너무 그럴듯했습니다… 참고로 전 몬테크리스토 원작은 본 적이 없어서 이 부분이 원작 그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듯하다는 말은 정말 있을법하게 내용이 전개되었다는 말입니다. 실제 일상에도 일어날 법한 느낌이었어요. 아마 원작을 그대로 차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은… 그의 인생이 망가지게 된 계기인 익명의 고발장이 사실은 그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 모렐 선주의 손에서 처음 탄생했다는 것… 그는 그냥 술자리에서 장난처럼 벌인 일이고, 없던 일로 하라며 웃어넘겼지만 그의 작은 장난이 결국 단테스를 지옥에 빠뜨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작 모렐 선주는 단테스의 구명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이후에도 많은 도움을 준 진정한 아군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해요. 그의 작은 장난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이니 모렐선주가 복수당해야 할 대상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런 양면성과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며 복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은유하고자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몬테크리스토 백작 자체의 감정선의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프로덕션의 차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게, 워낙에 뮤지컬은 배우마다, 그리고 회차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냥 그날의 김성철 배우의 몬테크리스토의 감정선이 그러했던 거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일단 제 기억 속의 10여 년 전 엄기준 몬테크리스토와 비교를 하자면! 제가 기억하는 몬테크리스토는 복수를 다짐하면서도 사랑 앞에 무너지는, 본심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복수를 위해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연회장에서 메르세데스를 10여 년 만에 재회하자 애써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눈물을 떨구던 엄몬테를 잊지 못해요… 엄기준 배우의 그런 젖어있는 목소리와 손짓을 좋아했습니다 ㅠㅠ. 엄몬테는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24년에 다시 새롭게 만난 철몬테가 메르세데스에게 느끼는 감정은 빌런 3인방에게 가지는 감정과 똑같아보였습니다. 그녀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이미 사랑 같은 감정은 지하감옥(샤또~~ 디ㅍ)에 묻어두고, 눈앞의 복수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이로 인해 죄를 짓고 더럽혀지는 자신은 더는 메르세데스와의 행복한 한 때를 그리는 일은 꿈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복수에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 게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더 사람이 망가진 느낌… 돌이킬 수 없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메르세데스가 몬테백작을 찾아가 알버트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했을 때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수도 없이 죽고 싶었을 때 그를 버티게 했던 존재는 오직 메르세데스였는데,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이제 그 아들과의 명예를 건 결투에서 져 달라(=죽어달라)고 말하는 상황…10여 년간 나를 살게 하던 이가 이제는 내게 죽으라 한다는 말을 내뱉는 철몬테가 너무 보기 힘들었습니다(좋았다는 뜻입니다). 그의 사랑은 여전하나, 사랑이 이미 그의 곁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버티고 살던 지하감옥생활은 이미 잘게 부서져 복수심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멈출 줄을 몰라서 그저 앞을 향해 달리는 위태로운 화신… 올뉴몬테의 새로운 캐릭터 해석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캐해석의 변화하면 메르세데스도 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녀 또한 19년 만에 다시 돌아온 옛 연인에게 직진하는 사랑만을 위해 사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지난 사랑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앞으로의 삶(아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사람의 캐릭터의 변화에서 몬테크리스토라는 작품의 캐치프레이즈가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에서 좀 더 용서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요. 이전 프로덕션에서는 몬테백작이 복수를 멈출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그녀의 아들의 친부가 자신이었어요. 이런 외적인 이유들로 복수를 멈추고 다시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이전 프로덕션의 결말이라면, 올뉴 몬테는 그저 단테스 스스로의 의지로 복수를 멈추고 용서를 결심합니다. 진정한 복수는 상대를 용서하는 것, 그리고 더는 이 절망의 굴레가 이어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이라고요. 작품 자체가 지닌 주제를 고도화함으로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 해석을 담아서 더욱 폭넓게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다른 배우들의 몬테크리스토도 무척 궁금하긴 했는데, 사실 재밌게 보면서도 올뉴 몬테를 한 번 더 보진 않을 것이라고 계속 생각했어요. 그 이유는 바로…


넘버와 서사는 올뉴 몬테 버전이 이전 프로덕션보다 압도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둘을 결심하지 못한 이유는 이번 시즌의 전체적인 연출 때문이었습니다. 연출이… 영… 취향에 안 맞아서… 보는 내내 아쉬운 장면이 한 둘이 아니었어요. 특히 지옥송 같은 부분은… 정말 시각적으로도 관객을 제압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무대를 좀 썰렁하게 쓰지 않았나 싶어요. 이전 프로덕션은 작품의 시대 배경에 충실하게 물리적 공간 연출을 해냈습니다. 근데 올뉴 버전에서는 무대 전체가 너무 감각적 공간으로 변해서… 공간을 1차원적으로 풍성하게 채우기보단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비유적 연출을 시도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취향에 안 맞았습니다. 시대배경이 명확한 대극장 극은 그냥 무대를 알차게 꽉 채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너무 비어보이면 제가 쓴 돈이 아깝습니다… 배우나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상연 시간 내내 제 시선이 마주하는 가장 큰 공간은 바로 무대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연출이 아쉽다 보니 다시 볼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도 올뉴 몬테 자체는 굉장히 만족스러워서 다음 시즌에는 재관람할 생각이 있습니다.


이미 내가 질릴 만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극을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보는 경험이 처음이라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신 프로덕션 작품에 대해서도 좀 긍정적으로 들여다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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