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것보다 못한 커리어
보통 근로계약들은 12월 31일 기준으로 마무리가 된다. 아직 정규직이 되어본적도 없고, 일반기업에서 진행하는 연봉협상도 난 아직 해본적이 없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그렇기도 하지만, 나의 커리어 대부분은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이곳이 남아있는 것과 별개로 계약이 끝내면 내보낼것인지에 대해 한달전에 제스쳐가 오지만, 이번에는 그런 말에 대해 일언 반구도 없었다. 이래저래 궁금해서 못참고 물어봤지만, 일단은 내년에도 특별히 계약에 대해서는 없그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뭐 정규직까진 아니래도, 무기계약직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칼자루를 내가 쥐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여기에 남을지 나갈지에 대한 선택권을 나에게 있다. 이래저래 장단점을 따져봤지만, 영 모르겠다. 세후 190 월급. 대표차량운전. 비정기적인 주말출근. 연차 없음.
이렇게 나열해보면 뭔 미친회사가 다있냐며, 당장 관두라고 말하겠지만, 당장 다른곳을 일할때가 없고, 나를 받아주는데가 없을까봐. 그럴까봐. 마음이 조급 해지고 힘이 든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물어봤다. 난 이딴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또 커리어를 끊고 다시 다른곳으로 이직한다면, 영 좋지가 않을거같다. 근데 여긴 아닌거같다. 조금더 버텨서 커리어를 쌓아야하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탈출해서 괜찮은곳을 찾아서 노력을 해야할지
내 나이는 36살이다. 누가봐도 적은 나이가 아니고, 커리어때문에 해메이면 안되는 나이 아닌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구태의연한 말도 정말 지겹다. 많은나이는 아닐지라도 적은 나이가 아닌것은 확실하다.
나의 고민을 들은 친구는 웬일인지 진지하게 내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줬다.
'나라도 널 안뽑아. 이직이 잦아서'
'난 쉬지않고 일한것뿐인데'
'차라리 쉬는게 나아. 최소한 사람뽑은 입장에선'
그리고는 사회복지사에 대해 미련을 버리고 다른일을 찾는게 어떠냐느니, 기냥 관두라느니, 뭐 해결책은 좋은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진지하게 내말을 들어줘서 좋았다.
그래도 난 해명하고싶었다. 아니 변명이라도 하고싶었다. 내가 왜 이런 커리어를 갖게되었는지.
1. 재가노인센터 4개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가 너무 못했고, 제대로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깐. 안타깝지만 그렇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로 가장 첫직장이었기에, 결국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부러지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게 정말 천금같은 기회였는데, 첫 단추를 잘못 꿴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2. 기숙사 생활지도 교사 4개월
마냥 놀수는 없어서 바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나에게 맞는 일 일수도 있고, 뭐라도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했으니깐. 뭐 운이안좋았는지, 이 당시에는 코로나19가 심한시즌이어서, 기숙사가 운영을 하지 않게되었다. 비 정기적으로 운영이 되었고, 애매하게 무급휴가인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그래도 나도 일할수 있는사람이란것을 알게되었던 고마운 곳이었다.
3. 장애인자립생활센터 19개월
기숙사가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무급으로 가만히 있을순 없었다. 그당시에 코로나 상황을 하루하루 바뀌어 가고 있었고, 당장에 언제까지 쉬고있을순 없었다. 그래서 결국 불안정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새롭게 이직은 했다. 나름 열심히 다녔다. 물론 2년을 채우진 못한것은 너무나 아쉽지만, 뭐 그래도 나름 열심히 다니고, 사회복지사로서 살아갈수 있는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 포기했구나. 바보 같다.
4. 근로지원인 4개월, 활동지원사 7개월
관두고 나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사실 이부분에서부터 잘못된것은 아닐까. 당장에 일할수 있는 곳을 찾다가, 그래도 바로 일할수있는 자격증이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평일에는 근로지원인, 주말에는 활동지원사 일을 했다. 휠체어를 밀고 업무를 지원하고 주말에는 탈시설한 장애인들을 위해 일했다. 근로지원인으로 일할떄 담당했던 장애인분은 휠체어를 타고다니셧고, 인지능력도 점점 떨어지고 계셨다. 그래도 같이 다니면서 꽤나 즐거웠던것 같다. 아쉽게도 인지능력이 점점 떨어져, 공공일자리도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계약종료가 되었고, 나도 계약종료가 되었다. 활동지원사 일은 지금 직장에 들어오고 나서도 후임자가 안구해져서 조금더 일을 했었다. 물론 무급으로 일한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에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를 주기가 싫어 한 2달을 주 7일 일하였고, 지금 생각해도 미친짓이었다.
기냥 변명이다. 이런걸 다 이력서에 적을순 없기에, 그저 누가 보기엔, 난도질 당한 커리어고, 포기하고 끈기없는 놈이라고 생각할것이다. 기냥 마음이 좋지가 않다.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아직도 바닥에서 헤메이고 있는 내모습이 괴롭다.
왜 도대체 열심히 일한것보다, 쉰 것을 더 높게 치는것인지, 난 없으니만 못한 커리어를 위해 살았던건지.
내가 왜 세후 190 인간이 되었고, 왜 세후 190 인간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변명이자, 이유인것 같다. 결국 평범하게 산다는것 조차 나에게는 오지 않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