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대화를 요청했다. 두세 시간 방에서 홀로 꽁해 있는 나를 보기가 불편했나 보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와 내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의외로 불편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모습에서 왠지 내가 내 집에서 객 식구가 된듯한 느낌. 시어머니가 아들만 각별히 또는 유별나게 챙기는 모습에서 잠들어 있던 내 어릴 적 트라우마가 살아났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챙김을 편안히 받고 한편으로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내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였다.
내 감정이 격해졌는지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도중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전 부절해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나는 안절부절할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원래 나한테 신경을 안 쓰니까. (트라우마가 그래서 무서운 거다)
내가 한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눈물을 한가득 쏟았다. 그 모습에 내가 더 놀랐다. 남편은 결혼 11년 동안 우리가 함께 넘겨온 고비들을 나에게 설명했다. 그렇게 슬프게 우는 남편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사로잡혀 있었구나.
남편은 가족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고 이게, 가정을 이룬 부부에게는 큰 미덕이다. 인정한다. 남편의 나에 대한 친절함과 성실함이 그저 내가 그의 아내이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 남편의 긍정적인 덕목마저도 내 트라우마 앞에선 아무 쓸모없이 여겨졌다.
남편은 단순히(그리고 나 역시도) 불편한 이 감정들이 그저 내 사적인 공간을 시어머니와 공유해야 함에서 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게 울고 불고 하는 대화를 끝으로, 남편과 나는 나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자 격한 감정들이 가라앉았다. 고맙소 남편. 그대는 나의 복덩어리오.
지금은 시어머니와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오는 불편함은 불편함 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달라진 점은 트라우마에 대해 인정한 뒤로는 마음이 더 편해졌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