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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린 Jan 16. 2024

나는 시어머니의 이름을 부른다

호주인 시어머니와 나#7

처음 시어머니를 만날 날, 그는 내게 본인의 이름을 부르든, 어머니라 부르든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내가 어찌, 남자친구(지금은 남편)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는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나는 남편의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랬던 내가 5년 전부터는 시어머니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시어머니를 시어머니의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의 이름이 제나라고 해보자. 나는 시어머니를 제나 무무 (Jenna Moo Moo)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무는 별 의미는 없다. 호주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 이름 뒤에 여러 애정이 담긴 말들을 붙인다. 애정표현이고 귀여운 장난이다.  


내가 왜 시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와 사연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가장 큰 이유를 뽑아보자면, '호칭에서 발생하는 건강하지 못한 기대와 요구를'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한국인 DNA, 그리고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결핍은 시어머니를 내 삶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려다 놓았다. 시어머니와 친해지고 싶었다.


1.

쿨하시던 시어머니가, 시누이(시어머니의 딸)와 관련된 일이라면 자주 감정적으로 되셨다.


내가 시누이의 생일 파티에 내가 못 가게 되는 상황, 정확히는 안 가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또는 시누이가 주최하는 가족 모임에 내가 빠질 경우, 시어머니는 지속적으로 나를 설득해서 결국 모임에 오게 했다. 정중하게 거절을 할 경우 내 앞에서 시어머니는 본인의 등과 고개를 휙 하고 돌린다던가, 나에게 인사를 안 한다던가 등의 행동을 하셨다.


시누이와 나는 데면 데면한 사이다. 시누이와 나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다. 시누이는 나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나는 처음엔 다가갔다가 서로 영 불편해서,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그래서 안다. 시누이는 나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섭섭해할 사람이 아니다.


어느 시어머니가 스치듯 하신 말씀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랑 남편이 시누이가 주최하는 가족 모임에 오지 않으면 시누이가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시누이는 장녀이다. 장녀로서 가족을 한데 모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고, 남편이 본인의 큰 누나에 대해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모임에 나타나지 않으니, 행복한 가족이라는 퍼즐을 맞출 없는 것이다. 정작 시누이와 나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사이임에도.


시어머니는 내가 본인의 딸을 불편하게 하는 게 싫었던 걸까? 그래서 내게 화를 냈던 것일까?  


2.
가끔 시어머니 댁을 방문하면, 시어머니는 신랑(본인의 아들)과 본인의 점심만 준비하셨다. 물론 난 시어머니가 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먹는 상황이 되면 기분이 상하곤 했다.

이런 상황들이 쌓여, 어느 날 분명히 깨달았다. 시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그를 어머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헷갈렸던 것이다. 내 엄마라는 착각, 그리고 내가 그의 딸처럼 될 수 있다는, 또는 내가 그의 친딸로 대접받을 것이라는 기대, 나를 친딸처럼 대해 달라는 내 안의 요구들.

진실이 아닌 것들을 싹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의 이름을 부른다.
시어머니도 내 이름을 부른다.  
깔끔하다.

시어머니가 내게 뭔가를 해주면 더 고맙다. 왜? 어머니라 부르며 시어머니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원했던 내 마음들이 이제는 없으니까. 호칭에 기대어 내가 며느리니까 며느리로서, 시어머니께 뭔가를 해드려야겠다느니 뭔가를 받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딸 같지 않은 애가 더 이상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니 더 속이 편하시지 않으실까?


최근 시어머니와 함께한 데이트에서 사먹은 음식들 ,우리는 함께  여기저기 잘 다닌다. 젓가락 사용을 힘들어하셔서 포크를 따로 가져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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