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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응민 Dec 26. 2020

코로나 시대의 품위유지

5분 글쓰기 : 보라매공원 출사일지에 덧붙여

오늘 보라매공원 출사는 초입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굳이 '단속반' 운운하며 출사일지를 풀어낸 까닭은 실제로 공원 내 방역 매뉴얼 준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 보라매공원 이용객 모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풀어내고자 한다.


https://brunch.co.kr/@kang91/30


신대방역 방면에서 골목을 따라 들어오면 보라매공원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는 노상 점포가 있고 운동시설이 설치된 간이 공원도 함께 위치해 매번 사람으로 북적인다.


출처=네이버 지도 거리뷰


주로 어르신들이 간이 의자와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는 한다. 겨울이 와서 노상점포의 수는 늘었고 더욱이 도림천과 이어진 까닭에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문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내리고 대화를 나누는 등 서슴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이에 경찰도 찾아와 주의를 주고 돌아갔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이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며 코웃음치고 있었다.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지 3명 단위로 끊어 주변을 맴도는데 사람들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나 또한 눈쌀이 찌푸려져 얼른 발걸음을 옮겼지만 공원 내도 별반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최근 크리스마스날 에버랜드 관광객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보라매공원도 사실상 마찬가지였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모임을 따로 가지지 않으니 문제 소지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순찰차가 공원을 돌아다니며 방송으로 집합금지를 강조하는 거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특히 중앙 광장의 트랙은 사람으로 가득차 방역 매뉴얼 기준에 미흡했다는 판단이다.


연말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계속되는 집콕에 지친 마음, 십분 이해한다. 그럼에도 행정 조치를 우습게 알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썩 달갑지 않았다. 더욱이 보라매공원에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중 하나가 장기판이 놓여 있는 벤치인데 여기가 막히니 공원 곳곳에 방역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항상 대국을 벌이는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이곳.
정자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판. 주전자로 막걸리인지 음료인지 나눠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에게 뜻 깊은 공원인 만큼 이런 사진을 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아래 기사를 보니 웃어 넘기기도 어려울 것 같다.


https://v.kakao.com/v/20201226204805948


여기에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 '단속반'인 줄 알고 경계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폴리스라인을 마음대로 치고 테니스를 치던 어르신이 대표적이었다.



임의로 라인을 만들어 테니스를 치고 있는 사람들.



출사일지를 작성할 때는 몰랐는데 통행에 꽤나 방해되는 모습이다. 요 근처를 서성이니 눈치가 보였는지 곧 라인을 철거하고 테니스를 그만두더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딱 적당하다.


나도 DSLR 카메라를 들고 여가생활에 불편을 준 점을 잘못이다. 그럼에도 '5인 이상 집합금지' 준수로 연말 각종 모임을 취소한데다 출사도 혼자 떠나고 있다. 여기에 당장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랜선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넘치는 업무에도 재택근무 시행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차치해두고 말이다.





만화 <헌터X헌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무엇에 분노하면 되는지' 알면 된다고. 집합금지 관련해 주의를 주는 경찰에게 '권력놀음' 한다고 말하며 분노하는 사람의 품위는 더 확인할 필요도 없다.


또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본모습이 보인다는 흔한 말도 있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대부분 사람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중이라고 판단한다. 솔직히 올겨울 재확산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되고 있지만 시민들 모두 경험한 적 없는 일상 속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모두의 품위를 떨어지는 일이 눈에 보여 안타깝다. 이러한 일보다 미담이 좀 더 눈에 띄는 내년이 되길 바란다.


공원 외진 곳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 어린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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