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시대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안전하고 청결한 그러면서도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넷플릭스 10부작 오리지널 드라마 ‘조용한 희망’은 빈곤과 불안정한 주거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리고 이러한 가난의 대물림을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한다.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노동의 배신’과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극찬을 받은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도대체 인생이 나아지기는 하는 건지. 나아질 수는 있는 건지. 조용한 희망마저 품을 수 없는 절망의 순간, 알렉스 앞에는 시의적절한 도움의 손길들이 다가온다. '조용한 희망'에서 유독 좋았던 것은, 주인공을 돕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였다. 이들은 앞서 언급했던 사회복지사의 행정적 자문이나 변호사의 법률서비스와 같은 현실적 도움뿐만 아니라, 알렉스가 자립할 수 있도록 영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무기력에 빠진 채 카펫에 누워만 있는 알렉스에게 "당장 일어나 나가서 뭐라도 해라"라고 소리치는 가정 폭력 피해자 쉼터의 대니엘, 엄마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푸근함을 나눠준 쉼터 관리인 데니스, 알렉스의 꿈에 다시금 불씨를 지펴주는 레지나까지. 그리고 이러한 도움을 받아들이고 끝내 앞으로 나아가려는 알렉스의 진취성이 그를 무한정 응원하게 하고, 우리 주변에 제2의 알렉스는 없는지 시선을 촘촘히 뻗게 만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대목은 '조용한 희망'이 남편 숀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그는 평면적이고 기능적인 악역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가정 폭력 피해자로 묘사된다. 이것은 단순히 악역에 서사를 부여하고 말고의 차원이 아닌, 가정 폭력의 범주를 한 가정에서 여러 세대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숀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딸 매디를 위한 선택을 한다. 이는 불행의 대물림을 제 손으로 끊기 위한 처절한 사투나 다름없다. 알렉스가 엄마와 아빠를 각기 다르게 대하는 것 역시 폭행의 대물림을 제 세대에서 끊어내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용한 희망'은 빈곤, 주거의 안전성, 가정 폭력의 대물림이 어떻게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원작자이자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스테퍼니 랜드는 6년간의 가사도우미 생활 끝에 몬태나 주립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러기까지 책에 미처 쓰이지 못한, 드라마에 담기지 못한 무수히 많은 고난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것은 꿈을 품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조용한 희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