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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미티스 Oct 08. 2023

축제, 그 장소에 대한 기억(2)

feat. 부산국제영화제

* 2001년 부산영화제에 다녀오면서 축제와 그 장소에 대한 단상을 적은 후기 (전편에서 계속)


만 24시간 동안 4편의 영화를 보고 한 번의 파티에 참석했던 부산영화제의 주말은 격렬히 지나갔다. 광복동과 남포동은 시끌벅적했지만 소리축제가 열렸던 전주나 국제 가면극제가 열렸던 안동에 비해 가슴속 아련한 여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공연이 있었던 전주 향교의 고즈넉한 분위기나 안동 하회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낙동강가의 절벽에서, 옛 모습 그대로를 재현했던 불놀이를 보며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가뜩이나 교통이 혼잡한 부산시를 가로질러 대형 임시 상영관이 마련되었던 벡스코와 남포동 사이를 상영시간에 맞추어 이동하는 것은 서울에서 분초를 다투며 전쟁처럼 치러내는 출근길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었고 인산인해의 인파 속에서 입장권을 마련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이틀은 휴식과 몽상과는 거리가 먼 또 한 번의 투쟁이었다.     


이런저런 기억의 갈피를 뒤적이다가 나는 어느덧 축소 지향적인 유형의 삶을 꿈꾸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비가 최대의 미덕이 되는 거대한 쇼핑몰이나 생산을 위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십 층 건물 속에서 느끼는 숨 막힘과 불안감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하다. 영화예술이 점점 거대화, 산업화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는 허전함을 거두어내지 못하던 차에 우연히 잡지의 한구석에서 발견한 한 구절은 작은 위안이 된다.     


‘영화를 장사로 취급하는 건 협잡꾼이나 창녀들이 하는 짓이야.’ 


막스 오퓔스의 아들인 기록영화의 대가, 74세의 마르셀 오퓔스가 프랑스의 주간지 <텔레라마>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일개 애호가의 희망 사항이 시대의 흐름을 뒤바꿔 놓을 수는 없음을 안다. 한쪽에서는 영화의 상업화, 거대화가 진행 중이지만 그 바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영화와 관객의 만남이다. 이 둘의 관계가 다양화되고 깊어지게 하는 장치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프랑스의 수많은 영화제 사이트를 뒤지다가 눈과 귀가 솔깃해지는 사이트를 만났다.     


<잔치가 시작되다!>라는 호객의 의도가 다분한 문구로 시작되는 이 사이트는 ‘우리 중 그 누가, 중세의 고성 한가운데서 마르셀 카르네의 <저녁의 방문객>을 감상하며, 샤르트르 대성당 앞 광장에서 유세프 샤인의 <운명>을 보며 신앙에 관한 성찰을 해 보고, 물결이 찰랑이는 강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관람하는 것을 마다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꿈꿨고, 씨네시트 영화제가 그것을 실현했습니다.‘라며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런데 이 페스티벌의 모든 영화는 무료상영된다는 점에서 관객들로서는 파격적이며 고무적이다.     


1989년 프랑스의 한 지방소재 영화 관련 단체 ‘장 비고 센터’가 고안해 낸 씨네시트 영화제는 1993년 프랑스 문화부의 문화재의 날 행사와 아키텐 지역 지방자치단체 행사 이후 본격적으로 프랑스 내 문화재급 명소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개성 돋보이는 영화제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목표는 ‘최신작과 고전 작품을 불문하고 영화라는 마술을 통해서 건축적 자연적 명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작품의 선정은 상영 장소가 내포하는 모든 상상의 산물과 관련 있을 것. 조건은 무료상영일 것, 야외의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할 것.’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93년 아키텐 지역 15개 장소에서의 상영에서, 2001년에는 프랑스 전역 110여 군데와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진출하는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결국 행사를 유치하는 주최 측, 주로 지방의 공공기관들이 제반 경비를 부담하게 되는 셈이지만, 지방 문화재명소 개방, 향토음식 시식회, 시음회, 저녁 만찬, 음악회, 전시회, 지방 특산물 판매, 불꽃놀이 등의 행사를 포괄하는 잔치 분위기는 시골의 축제를 묘사한 자크 타티 감독의 ‘축제날’을 떠오르게 한다.     


2001년에 상영되었던 프로그램을 잠시 살펴보면, 한여름의 마랑 해수욕장에서는 자크 타티의 <윌로 씨의 휴가>가, 로슈포르 옛 도살장의 음침하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서는 주네와 카로감독의 <델리카테슨>을, 풍차로 유명한 페삭 쉬르 도르도뉴의 ‘물방앗간 축제’ 행사에서는 마르셀 파뇰의 <빵집 여인>을, 조르주 상드의 집이 남아 있는 노앙 빅에서는 그녀와 알프레드 뮈세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세기의 아이들>을 상영하였다. 나는 어느새, 남원의 광한루에서 <춘향전>을, 경복궁 옛 중앙청 자리에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서울 근교, 철교가 지나는 한강 지류의 공터에서 <박하사탕>을, 지리산 골짜기에서 <태백산맥>을, 조용한 산사에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상영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가 상영작과 함께 어우러져 우리에게 남기는 깊은 울림 속에 젖어든다.     


나는 롤랑 바르트가 남긴 ‘극장을 나서며 (En sortant du cinema)'라는 글을 떠올린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주체는 한 가지 점을 자인해야만 한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불빛이 밝혀진 약간은 한적한 거리로 나와 (그가 영화관에 가는 것은 늘 평일 저녁때이다) 힘없이 적당한 찻집을 향해, 약간은 둔한 듯, 아무 말 없이 (그는 방금 본 영화에 대해서 곧바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걷는다. 그는 졸린 것이다. (...) 우리는 한가함, 시간적인 자유, 휴가로부터 출발하여 영화관에 간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모든 것은 비어있음, 한가함, 무료함과 같은 최면의 고전적인 조건들이 마치 결합되어 있는 듯이 지나간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의 뜻은 비단 작품 자체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겠다. 바르트만큼이나 나 역시, 극장에 들어가는 행위와 나서는 행위에서 일종의 최면상태와 그 최면상태로부터의 깨어남을 경험하며,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바르트에게서는 이것이 '극장'만으로 축소되지만 나에게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든 공간, 나아가서는 그 공간들의 집합인 영화제까지도)과 관객인 나 사이의 관계, 그 에로틱한 사랑의 관계를 화들짝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제까지 다소 산만한 글쓰기를 통해 결국, 영화와 영화가 상영되는 장소 간의 거리감, 영화와 나 사이의 거리감, 장소와 나와의 거리감, 이런 삼각 구도를 이루는 아슬아슬한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축제라는 것도 알고 보면 축제와 삶의 거리감 때문에 더 가치를 띠게 되는 것일까. 그 거리감이 매혹의 원천이 되는 것일까. 바르트가 말했던 ‘사랑의 거리감’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금세 멀리로 부산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과 도심의 빌딩들, 저 멀리 바다 위의 고깃배들이 밝히는 불빛, 불빛들. 가슴이 저려 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상공에서 공중 영화제를 열어 보는 건 또 어떨까. 상영작은 생텍쥐페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1932년작 <야간비행> 정도면 되겠다. 나는 부산의 북새통 같았던 축제로부터 ‘이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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