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미티스 Sep 01. 2024

『뒤죽박죽 내 인생』

by 소피 필리에르 – 2024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년 빠뜨리지 않고, 참가한 영화를 챙겨 보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였는데 올해는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머지, 보고 싶은 영화들을 미리 챙겨 예매해 두는 일을 하지 못했다. 영화제가 8월에 있다는 사실도 하얗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미 시작된 것을 알고는 부랴부랴 간신히 한 편을 건졌다. 바쁘고 정신없는 8월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CGV 홍대점을 찾았다. 


주연 배우 아녜스 자우이 (출처: Quinzaine des cinéastes)


 소피 필리에르 감독은 일곱 번째 장편인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병이 깊었다고 했다. 촬영을 마친 직후 세상을 떠났고 후반 작업은 남은 사람들이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부러웠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소망일 것이므로. 


 내 또래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라기에 친구의 이야기를 엿보는 심정으로 상영관을 찾았다. 너무 오랜만에 홍대 근처 나들이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연남동에서 살았기에, 이 부근은 나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낯선 느낌, 내가 시간 여행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정다웠던 등하굣길은 ’타임스퀘어‘가 되어버렸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소용돌이치는 요즘의 생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제목인 ’Ma vie, ma gueule‘은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내 인생, 나의 동무라는 뜻으로 인생을 의인화하여 친구처럼 생각한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만큼 나에게 가까운 존재가 또 있을까? 나는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으며, 인생이라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 입장에서도 또한 나를 있는 그대로 다 알고 있으니.  


 한때는 사랑받았고, 한때는 좋은 엄마였으며, 직장인이기도 했던 바르브리 비셰트. 모두 그를 바비라고 부른다. 시집도 한 권 낸 시인이지만, 광고회사에서 재능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며 사회생활 적응에는 실패한 듯 보인다. 남편과는 별거 중이지만 아직 인구조사 같은 데 정식으로 기록하지는 않는다고 딸에게 변명한다. 욕실에서 자신의 벗은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아직 쓸 만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늘어가는 혼잣말에 행여 누가 들었을까 화들짝 지레 놀라기도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마스카라를 바를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포자기하듯이 다시 뚜껑을 닫는다.     


늙는다는 건, 저 거울 속의 낯선 사람이 과연 내가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것인가?     


마음을 다해 키운 자식들은 장성해서 곁을 떠나고, 그들은 자신이 떠나면 혼자 남겨질 엄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어디선가 무사히 잘 살아주기만을 바란다.

어쭙잖은 동정심을 시전하려다 집시 아이들에게 대차게 욕지거리를 듣고 망연하게 앉아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온다. 나 누군지 알겠어? 전혀 몰라? 기억 좀 해 봐. 여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나는 내 인생에 일어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있다고 한 것이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      

 

생면부지의 남자가 다가와 자기를 기억해 보라는 말에 혼란을 느낀 여자는 스물두 살에 죽은 친구 하나를 떠올리다가 거의 착란 상태가 되어, 그가 자기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라고 생각하여 충격을 받고, 함께 가지 않겠다고 거세게 저항하다가 쓰러진다. 그길로 병원으로 실려 간다. 여자는 평소에도 상담사와 상담을 받는 중이었고 뭔가 약도 처방받고 있었다. 상담사는 여자의 질문에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늘 시큰둥하긴 했지만.      

병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퇴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가 마음을 바꿔 혼자서 떠난다. 영국으로. 거기서 옛 친구를 만나, 병원에 들어가는 데 일조했던 낯선 남자 베르트랑이 어린 시절 남자 친구였다는 얘기를 듣는다.      


영국에 도착해서 먹은 감자튀김을 담았던 종이에서 광고 하나를 우연히 보고는, 시골로 간다.

스코틀랜드 어디쯤으로 보이는 멋진 풍광에, 캠핑도 할 수 없다는 1제곱미터의 땅을 산다. 그곳에 땅을 사면 영주가 된다는 광고였다. 그 땅에 박힌 말뚝 옆에서 뿌듯해하는, 심지어 이로써 이제까지의 모든 불안과 그에 따른 역경을 ‘극복했다’며 ‘이웃 영주’와 서로를 격려하는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대한 최고의 농담이었다는 생각에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예능 프로를 자주 본다. 시끄러운 슬랩스틱보다는 조곤조곤 재치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쪽을 선호한다. 그리고 가장 우울하고 슬픈 순간에 코미디를 썼다는 우디 앨런을 기억한다.      


잠시 길을 잃었던, 그리고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믿는 한 여자의 코믹하게 슬픈 이야기를 보고 나니 난데없이, 어느 날 신문 기사를 읽다가 화면 캡처해 두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한 구절이 생각났다.       


“갑자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불쌍한 선원들은 화들짝 놀라 당장 또 다른 고래와 싸우러 달려가서, 진저리나는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 친구들이여, 이것은 정말로 사람 죽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는 오랜 고생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덩치 큰 동물에게서 비록 적지만 매우 귀중한 경뇌유를 뽑아낸 뒤, 녹초가 되었지만, 참을성 있게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내고, 영혼의 임시 거처인 육신을 깨끗이 유지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자마자, ‘고래가 물을 뿜는다!’ 하는 외침 소리에 영혼은 용솟음치고, 우리는 또 다른 세계와 싸우러 달려가, 젊은 인생의 판에 박힌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다.”     


뒤로 갈수록 뭔가 정돈되고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나, 뭔가를 더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렇게 착각했던 한때의 나를 포함해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어 보시라. 그런데 이 영화가 ’코믹하게 슬프기‘보다는 ’조금 슬픈 코미디‘ 쪽에 더 가깝기를 바라는 나는, 이만하면 낙천적인 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루하고 아름다운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