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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 좋았지 Sep 06. 2022

독립을 결심하다

이대로 살다간 미칠지도 모른다. 사생활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무얼 할지, 저녁은 뭘 먹을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유아적으로 사는 것에 환멸이 치민다.


이제껏 편안하게 자궁 속 아기 마냥 얹혀살아놓고 이런 괘씸한 개소리를 늘어놔도 되는걸까? 내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자 환희와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오르면서도 까슬까슬한 죄책감에 마음 한 구석이 쓰라리다. 뼈 빠지게 키워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더 이상 같이 살기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와 같은 상태에 놓여 들뜨다가도 상황을 어른스럽게 정리할 능력이 없는 나 자신에게 무기력함을 느낀다.


오랜 시간 동안 발생한 갈등을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보겠다.


나는 엄마에게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을 기댈 폭신한 일본식 계란말이 같은 존재였다. 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났고 엄마에게 힘이 되는 것에 보람도 느꼈다. 건조하고 약간은 까슬한 건미역 같은 언니들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와서 아이처럼 기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마가 약해져 갈수록 기대는 무게가 무거워져 힘이 들었다. 엄마는 종종 감정 조절에 실패해 나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퍼붓기도 했고 본인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을 같이 험담해 주지 않으면 나를 쉽게 죄인으로 만들었다. 엄마가 술을 마셨던 어느 날 언니에게 화가 난다며 나를 때렸던 장면도 생각이 난다. 분명 나도 엄마에게 상처를 준 날들이 많을 텐데 이기적이게도 내가 받은 상처들만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녀에게서 받은 작은 상처들과 감정적 괴롭힘이 쌓여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를 보는 게 불편해졌다. 나와 다시 연결되고 싶어하는 그녀를 보는게 힘들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자꾸만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그녀가 밉다.


나는 정말이지 생각이 많고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오감이 발달해 자극에 민감하고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기도 하다. 10 시절 학창 시절을 보낼 때는 이런 독특한  때문에 정해진 규율대로 지내야 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많이 괴로웠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20살이 되고 예술을 전공하면서 이제껏 불편하게 느껴졌던  모습이 예술가로서 귀한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하고 나를 예술적 수단으로 표현해야만 행복해질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아빠가 미친듯이 크게 틀어 놓는 티비 소리에 괴로운 감각 과민증 막내 딸로 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독립을 하려는 본질적인 이유인  같다.  


최근 김종원 작가님의 말씀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었는데,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견디기가 어려워서라고 한다. 이제껏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했었는데, 그것은 끝없는 자기혐오로부터 오는 외로움과 괴로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은 편해졌고, 혼자 있을 수 있게 되니 글을 읽게 되고 쓰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온전히 홀로 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글이든 그림이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활동을 찾고 훨훨 날고 싶다. 정말 홀로 설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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