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리는 딸에게서 나를 보았다
11살 딸, 아빠도 연약하고 무서운데...
개학 하루 전, 딸이 저녁밥상 앞에서 힘들어했다. 이유를 물었으나 잘 대답하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고 한다. 밥을 잘 안 먹는 편인 아이라 오늘따라 밥을 먹는 게 힘들었을까? 아니면 새 학년 새 반을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걸까? 아내와 내가 유추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딸은 자신만의 정체 모를 힘겨움과 싸우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 잠도 편히 들지 못했다.
이유를 말하지 못하니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위로를 하거나 안정시킬 방법도 모르겠었다.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옆에 있어달라고 하거나 안아달라고 할 때 말을 들어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힘들게 잠이 들었고 아내와 나는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딸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어릴 때 나의 감정이 사뭇 떠올랐다. 감사하게도. 나도 그런 말로 설명하고 스스로 정의 내리기 힘든 두려움이랄까, 그런 것을 느껴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너무나 막연하지만 나는 작은 힘에도 꺾여버리고 마는 들꽃 같은 존재이고 세상에는 나를 꺾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은. 무엇인지도 모를 그것들에게 나 스스로 압도돼서 괴롭고 외로워 울 것만 같은 기분.
아내는 살면서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힘들어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4학년이 되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부담되는 게 이유였을 것이다. 개학 첫날까지도 똑같이 힘들어하다가 2, 3일 차쯤부터 괜찮아진 것을 보고 그렇게 판단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 싫다거나, 걱정할까 봐 숨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뿌옇지만 커다랗게 다가온 이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하느라 그 속에 숨겨진 자신의 두려움의 근원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히 최근에 나도 스스로도 오랜만에 그런 감정에 휩싸였다. 처음이 아니라 오랜만. 감정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낯설거나 당황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역시 힘들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밥 먹기가 부담스러웠다. 음식물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불편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이 먹었다. 역시 불편했다. 식탁 앞에서 울던 딸의 모습이 나와 겹쳐졌다. 아빠는 삼십 대 중반이기에 울지는 않았지만.
미팅이 있었다. 규모가 꽤 큰 프로젝트였다. 오랜만에 이런 프로젝트를 책임지게 된 나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준비를 잘하고 싶은데 내가 바랐던 만큼 하지 못했다.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여건이 되든 안되든 나는 더 잘하고 싶었다.
미팅이 잘 안 되었나? 그렇지는 않다. 다음 단계로 순조롭게 진행하면 될 좋은 분위기였다. 보통은 미팅을 하고 나면 개운하다. 부담의 크기만큼 시원함도 더하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회의실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내 뱃속에 있던 돌덩이는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미팅 자체가 부담은 아니었나 보다. 발걸음이 무거워 근처 카페에 주저앉았다.
"나 왜 힘들지?"
익숙한 그 뿌옇고 무거운 감정을 짊어지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었다. 막상 질문을 던지고 나니 오히려 역설적으로 왜 한동안 이 감정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것인가 궁금해졌다.
"욕먹을까 봐 무서운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아 하는 나와 마주했다. 모든 과정에는 티도 없고 흠도 없길 바라는 나. 실수하고 사과하는 일이 발생하는 걸 싫어하다 못해 무서워하는 나를 만났다. 아직 시작 단계에 있지만 과정마다 뭔가를 잘못한 내 모습을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려내고 있었다. 내 감정의 구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던 건 불안이라는 녀석이었다.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막연히 모든 과정이 순탄하기를 바란다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인해서 누군가와 부딪히고 갈등을 만드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어렵다. 사과하고 수습하는 과정은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특히 낯선 사람이 그 과정에 끼어 있다면 그 불안은 매우 강력해지는 것 같다. 살다 보니 모든 일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니 이 마음의 문제는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겨내야 할 뿐. 결국 나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하는 싸움이다. 내가 사람을, 특히 낯선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시작해야 했다.
어린 날의 내가 가지고 있던 이 성향이 2,30년 동안 나와 계속 함께한 것이다. 이제 막 작은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처음 이런 감정과 마주한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을는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이 감정을 마주하는 아이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지켜봐 주어야 할 것 같다. 금방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욕심이지 않나 싶다. 스스로 불편함을 느껴서 언젠가는 극복하려는 용기를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더 보듬어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래 걸리더라도. 아이가 빨리 어른인 척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기로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