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삶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유명 작가의 ‘흥미로운 중년’에 관한 칼럼이 화제다. 작가는 매력없고 고인물 같은 중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책과 거리가 먼 것이라며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책을 읽자고 강력히 독려한다. 21세기 초반만 해도 독서는 지성의 상징이었고 대부분의 정보를 책을 통해 얻었다. 하지만 즐길거리가 많아지고 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가 된 지라 작가의 의견을 두고 SNS상에서 찬반이 격렬히 엇갈렸다. 삶의 제법 긴 시간을 책과 함께 했지만 선뜻 작가의 편을 들 수 없을만큼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지 않아 보였고 또 많은 생각거리를 던졌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78952
지방에 뚝 떨어져 자영업을 하게 된 30대 초중반 이후로 3~4백권에 달하는 책들을 읽었다. 퇴근 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저 조금 똑똑해지고 싶어, 성인 및 직업인으로서 필요한 교육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 하나 둘 득템한 책들이 어느덧 방과 거실 모퉁이 한가득이다. 이리 될 줄 모르고 서재를 꾸미지 않은 게 후회막심인지라 장차 번듯한 서재를 꾸미는 게 버킷리스트 수위에 있는 로망이다. 처음에는 역사, 지리, 철학, 경제 위주로 가다가 어느 순간 정작 ‘이불밖 진짜 세상’에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어 경영, 마케팅, 자기계발, 부동산 등의 분야도 입문하기 시작했다. 실용적이긴 하나 굳이 소장하기 애매하다 싶으면 아이패드에 넣어 공간의 문제를 해결했다.
컨셉도 근본도 없이 읽었지만 독서의 효용은 나름 분명했다. 일단 어디가서 무슨 얘기가 주제로 나와도 슬쩍이나마 낄 수 있었고, 간단한 문답은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도 대화가 가능해졌다(물론 이건 직접 경험한 상대방이 겸손하고 생각이 열려 있어야 가능하긴 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차차 알게 되면서부터(a.k.a 메타인지) 언제부터인가 질문을 하기 전에 이 말이 얼척없거나 무례하진 않을까 돌이켜 본다. 거창하게 자기계발이랄 것까진 없지만 독서가 아니었다면 삶이 정신적으로 크게 황폐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책을 읽고 이 나이가 되었어도 부족하거나 못하는 게 너무도 많다. 하나의 사회 현상에 대해 개인의 의견만으로 논평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어렵다. 내년 경제와 부동산 및 주식 전망 같은 건 엄두도 못 낸다. 각국의 역사를 시대별로 많이 접했지만 어느 나라가 왜 살기 좋고 어떻게 강대국 혹은 약소국이 되었으며 어떤 산업이 왜 발달했으며 세금이 많고 적은 배경은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아직도 위키나 유튜브를 뒤적거려야 한다. 유상증자, 자본잠식, 지분교환 등의 기업 용어가 나오면 그야말로 아득하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깜깜하여 기분을 상하게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며, 영화나 드라마에서 캐릭터 분석에도 둔하다.
사실 독서 그 자체로는 지식을 조금 더 얻고 개인적인 생각을 약간 확장할 수 있을 뿐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남의 마음을 사고 해당 맥락에 맞는 대화를 나누고 돈을 벌어오려면 지식 그 이상이 필요하다. 사회 생활에서 비교적 확실한 입지를 구축해야만 소위 말하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한 독서만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 일단 매력적인 외모와 남다른 친화력 등은 타고나는 측면이 있는데 이건 어줍잖은 지식보다 훨씬 힘이 세다. 타인의 마음을 뺏는 ‘리쎌 웨폰’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타고난 영리함과 순발력의 얄팍함을 지적했지만 그런 재능의 수명은 의외로 길며 효용 가치도 크다(아마 그 재주로 평생 버티며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출장과 여행을 통해 오감에 쌓인 견문은 책 이상으로 그 사람의 사유를 풍성하게 해 준다. 그리고 직업 현장에서 각종 실무를 하며 몸에 배인 ‘커리어 근육’은 오직 직접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다. 진짜 ’비극’이자 ‘반칙’은 이렇게 외모도 빼어나고 핵인싸 성격에 직무 경험까지 쌓인 사람들이 독서까지 해버릴 때 일어난다. 안 그래도 외적으로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단점을 채워 ’밸런스‘까지 맞춰 버리면 그냥 책만 열심히 읽는 사람들은 도저히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독서 애호가로서 작가의 주장이 반갑고 또 일견 동의하지만 하나 묻고 싶다. 칼럼에 언급한 언급한 잡학에도 깊이를 담을 수 있고 흥미로운 생각을 조리있게 풀어내며 확실한 콘텐츠를 가진 그런 사람들의 배경과 맥락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필시 그들은 직업에서 취미생활 및 인간관계에 걸쳐 다양한 직접 경험을 하면서 ‘보완재‘로서 독서를 덧붙인 경우가 상당수일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에게 독서는 하면 좋지만 안 한다고 큰일나진 않는 그 무엇이다. 이미 이들은 직접 경험만으로도 알찬 청년 시절을 보내고 있으며 별일이 없다면 매력적인 중년으로 나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연차에 걸맞는 좋은 경험을 할 기회들이 계속 올 것이고 수준높은 사람들을 만나 더 성장할 것이다. 물론 지적 갈증과 내적 성장을 위해 가끔 책을 읽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만족스러운 삶에 독서가 기여한 몫이 그렇게 많이 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전히 주기적으로 대형 서점에 간다. SNS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캡처해 둔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독서의 한계를 보다 명확히 인지하며 독서에 대한 기대도 상당 부분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좀 비우니 오히려 더 주체적으로 책을 대하게 되었고 세상의 다른 볼거리에도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공부하듯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크게 자유로워졌다. 뭐든 약간 거리를 두어야 소중히 느껴지고 또 새로이 보이는 법이다. 책의 우선 순위를 마음에서 조금 내려도 괜찮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오히려 책이 삶에 더 크게 기여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