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아침,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
오랜만에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유리 지붕에 다라락 노크하는 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서둘러 널어놓았던 빨래를 안쪽으로 옮겼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어제까지 미세먼지로 뿌옇던 공기가
빗물에 말갛게 씻겨 내려가고,
빨간 벽돌들이 제 색을 찾아 선명하게 서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잠들어있던 고무나무, 벤자민, 야자가
하늘하늘 춤을 춘다.
이불 안에서 '초록이 무도회'를 잠시 구경한다.
이불 밖으로 빼꼼 나온 얼굴에 닿는 시원한 공기가
목마름에 마시는 냉수처럼 시원하게 달다.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정도 여유가 있다.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려다가
이내 잠을 털어내고 포트에 물을 올렸다.
어떤 차가 좋을까 잠시 생각한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페퍼민트 잎을 한 스푼 떠내
보글거리는 물에 띄운다.
콧속까지 상쾌한 민트향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따끈한 민트 티를 손에 쥐고 식탁에 앉았다.
오롯이 지금을 즐겨본다.
시원한 바람, 잔잔한 빗소리, 향기로운 차 한 잔.
집안에서 즐기는 빗소리는
이렇게 고요하고도 웅장하고,
시원하고도 따뜻하다.
지금 이 순간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는 건
삼십 후에 찾아올 일상,
출근 덕분이다.
때로는 하기 싫은 것들에 매몰되어
눈앞의 행복을 보지 못하기도 하지만,
하기 싫은 바로 그것들 덕분에
지금의 행복이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비에 발이 축축해져 본 경험이 있다면,
비가 와서 발이 젖을 것을 상상하며
얼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집안에서 빗소리를 들을 때의 아늑함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다.
어떤 기분을 만끽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그래도,
출근길에는 비가 그치길 빌어본다.
비에 발이 축축하게 젖는 것은
영 찜찜하니까.
이미지 출처
EBS_기상_0034, 한국교육방송공사 (저작물 40455 건), 공유마당, CC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