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그릇이 주는 행복, 향수병을 치유하다.
밴쿠버 여행, 아니 밴쿠버에서 10개월 정도 여행 및 체류를 한 적이 있었다. 평일에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오는 한국학생들과 캐나다 가정사이를 이어주는 홈스테이회사에서 영어통역을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밴쿠버를 비롯해 브리티쉬컬럼비아, 빅토리아 및 알버타주를 여행하기도 했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떠나기 전 내게 약속을 했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캐나다인 홈스테이에서 계속 머무르겠다고. 비용절약을 위해서는 아파트렌트를 하면서 어학연수를 온 한국학생들과 쉐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길지 않은 기간, 캐나다까지 가서 한국말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통역을 하러 갔다지만 여전히 스스로 영어공부에 많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어떤 음식이라도 잘 먹는 나는 캐나다 홈스테이에서 2~3달 정도 한식을 떠나 정통 캐나다인들의 식사로 정말 잘 버텼던 것 같다. 간간히 김치, 고추장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그렇게 절실하게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3달정도 지났을까, 김치나 고추장보다는 오히려 야채와 짭쪼름한 양념이 너무 당긴다. 캐나다인들의 육식 위주의 식사는 샐러드로 야채를 먹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들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점심으로 싸주는 샌드위치도 우리가 한국에서 늘 먹던 야채 듬뿍, 치즈, 햄 듬뿍이 아니라,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빵사이에 치즈한장 달랑 넣어갈 때도 있었다. 근데 지나고 보니, 이게 그리 비정상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샌드위치를 잘 해서 먹을 때도 있지만, 바쁠 때는 그냥 그렇게 먹기도 하더라. 마치, 한국사람들이 밥하나에 김치만 먹을 때도 있듯이.
여튼, 매일 계속되는 심심한 양념의 고기위주의 식단, 햄버거와 샌드위치, 그리고 조금의 야채와 과일, 몸에서 이게 한계점에 다다랐다. 내게는 야채와 짭쪼름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밴쿠버에는 맛집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장모집이나, 서쪽나라같은 한국식당도 다수가 되고, 이태리, 태국, 중국, 일본, 그리스 식당등 인종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식당도 다양했다. 그 중에서 우연히 한번 방문했던 곳, 몽골리안 바베큐. 스탠리 공원 입구에 있는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번 한 순간, 드디어 내가 그토록 찾던 야채듬뿍, 짭쪼름하고 매콤한 양념의 요리를 제대로 찾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All you can eat 즉, 뷔페형식의 식당이었다. 큰 그릇으로 한 그릇 가득(눌러 담던, 구겨서 담든 상관없이 당시 1인당 약 7~8,000원정도로 기억한다.) 각종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고, 원하는 각종 양념을 기호에 맞게 한 다음, 주방장에게 가져다 주면 즉석에서 원형의 큰 철판에 바로 볶아 주는 형식의 정통 몽골리안 바베큐 식당이었다. 더구나 마지막 요리가 다 된 야채와 고기를 큰 철판에서 바로 긴 젓가락을 이용해 쓸어담듯이 큰 그릇에 조금도 흘리지 않고 다시 담아내는 신속하고 역동적인 동작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금요일 점심만큼은 일주일 동안 부족했던 야채와 한국식 양념으로 풍족히 먹을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아침에 홈스테이를 나서면서 이 몽골리안바베큐 식당에서 점심먹을 생각으로 늘 행복했었다. 한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수개월동안 금요일 점심만큼은 이 곳에서 정기적으로 식사를 했다. 혼자서 먹든, 아님 동료들과 함께 먹든.
밴쿠버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아쉬운 마음에 여기서도 식사를 했었다. 수십번도 더 먹었던 음식이지만, 유독 너무도 맛있었던 그 마지막 식사의 기억. 다시 밴쿠버를 찾을 날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식당을 나섰다.
먼 타국땅에서 한끼의 식사가 주는 행복과 만족은 돈으로도, 수치로도 계산될 수 없는 것이었나보다. 누구에게는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한 한끼의 식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며 또한 타국에서 살아가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분명 언젠가는 다시 밴쿠버를 찾을 것이다. 그때 난 다시 몽골리안바베큐를 먹으러 갈 것이다. 맛있었던 아름다운 옛 기억을 떠올리며, 발걸음도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