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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옹 Oct 14. 2018

여행수필 38 - 고난의 스키장, 가장 추었던 겨울

끝까지 갔다. 이제 좋은 것들아, 나와라.

심옹의 여행수필 38편


내 생애 가장 추웠던 겨울. 그것은 한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형, 오늘 밤에 야간 스키장 안 갈래요?"

"흠.. 내일 오전에 약속이 있기는 한데. 어차피 밤늦게 오는거지?"

"네, 8시부터 서너시간 정도 타고 올 거에요."

"오케이, 콜." 


후배의 전화에 나는 스키복을 챙겨들고는 집을 나섰다. 나와 후배 둘이서 자가용을 타고 스키장으로 향했다. 30대 중반에 재미를 들인 스노보드. 하지만 매번 서울에서 한두시간 스키장을 일부러 찾아가야한다는 번거로움로움으로 인해 조금은 그 재미에서 멀어질 때 쯤이었다. 그래도 후배의 전화로 인해 간만에 타는 스노보드, 조금은 기대도 되고 설레기까지 했다. 


저녁무렵에 도착, 각자 신나게 스키를 타고는 12시가 조금 넘겨서는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다들 차로 향했다. 하지만 차에 도착해서 탑승하려는 순간, 운전을 했던 후배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형, 주머니에 차 열쇠가 없어요. 스키 타다가 잃어버렸나봐요."

"뭐? 잘 찾아봐, 혹시 다른 주머니에 없니?" 


주머니와 가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차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운전을 했던 후배는 스키장으로 차열쇠를 찾기 위해 달려갔다. 나와 다른 남은 후배는 열쇠를 찾으러간 후배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12시 넘은 새벽, 날은 더 추워져가고, 남은 후배가 이왕 이렇게 된 것, 하룻밤 자고 가자는 제안을 한다. 나도 웬만하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내일 오전 약속은 도저히 깰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가지 않으면 수십명의 학생들이 인솔교사 없이 행사를 해야되는 난감한 입장이었다. 난 무조건 오늘 새벽에라도 서울로 돌아가야한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후배는 열쇠를 찾지 못했다. 급기야 최후의 방법. 새벽에 서울로 떠나는 아무 차라도 잡아서 타고 갈 심산이었다. 다행히 서울로 향하는 차를 발견했다. 새벽 2~3시경, 염치를 불구하고 초면인 사람들과 동행을 했다.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서울 잠실역까지 간다고 한다. 그래서 잠실역에 내려달라고 했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 가서 좌석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 된다.


후배둘을 스키장에 남겨두고 나홀로 생전 처음 보는 분들에게 신세를 졌다. 낯선 사람과의 동행, 7인승 차량이었는데 서울 오는 내내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더불어 차안에서의 수다로 제대로 잠을 청할 수는 없엇지만, 서울까지 흔쾌히 태워다주는 것이 어딘가? 새벽 5시쯤, 추운 겨울의 칼바람을 가르며 무사히 잠실역까지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그냥 내리기에는 너무 미안해서 차비로 얼마의 돈을 드렸다. 한사코 안 받으실려고 했지만 던져드리다시피하고는 몇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무사히 도착한 잠실역.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5시, 잠실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굳건히 잠겨있다. 지하 보도는 통행이 가능하지만, 지하철 운행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더 기다려야했다. 문제는 추위. 겨울 새벽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지하도 밖 인도에서는 도저히 서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지하 통로는 좀 낫겠지라는 생각도 여지 없이 무너뜨리며, 칼바람이 지하통로로 연신 왔다갔다한다. 


대학때 10월말, 천왕산 꼭대기 근처에서 텐트없이 침낭하나로만 야외취침을 했을 때도 이만큼 춥지는 않았었다. 시간아 빨리가라를 중얼중얼거리면서, 지하철 역사의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러가며 철문앞에서 매서운 겨울 칼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분,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온전히 겨울바람을 맞은 손과 발은 꽁꽁 얼어붙어가고, 지하철 역사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달렸다.


하지만, 집으로 오는 내내 지하철에서, 좌석버스에서 그 냉기를 떨쳐버리지 못할 정도로 혹한은 이미 몸 속 깊숙히 파고 들었다. 새벽내내 잠도 못자고, 추운 날씨에 온 몸은 얼고, 그 6~7시간동안 나의 행색은 거지나 다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7시쯤 집에 도착, 9시 약속시간까지 집 근처에 있는 온천에서 몸을 녹이고 가야할 것 같았다. 곧바로 동생 차를 빌려서는 집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찜질방으로 향했다. 온천장에 몸을 담구는 순간,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깊숙히 자리한 언 세포 하나하나에 온기가 전해지는 느낌. 온천장에서 30~40분 몸을 녹이니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든다. 이제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는 약속장소로 향하면 된다.


하지만, 찜질방 주차장에 세워놓은 동생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배터리 방전. 아, 모든 시련은 왜 이렇게 한꺼번에 찾아오는 걸까? 휴대전화로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30여분만에 기사가 오셔서 시동을 걸었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기는 했지만, 다행히 나와 약속되었던 모든 행사는 순조롭게 치뤄졌다. 


아직도 눈을 감고 그 때를 생각하면, 뼈속 깊이 냉기가 스미는 듯 하다. 30여분간의 지하보도에서의 기다림, 그 칼바람이 내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고, 몸안의 모든 세포가 그것을 기억하는 듯 하다. 전해들은 소식이지만, 그 날이 그 해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난 스노보드를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겨울 추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추위를 추억으로 가지게 되었다.


심옹의 여행수필 39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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