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옹 Oct 24. 2018

여행수필 39 -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것들

누군가에게는 한번 보고 끝일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심옹의 여행수필 39편


필리핀 마닐라 공항의 새벽 도착은 처음이었다.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 1시쯤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어쩌다보니 필리핀 여행을 자주하게 되어서 그런지, 한국의 공항보다 더 익숙한 마닐라 공항 터미널 3. 그 날도 날렵하게 모든 수속을 마치고 택시를 잡으려고 1층 도착층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 앞에 있던 공항직원처럼 보이는 분이 내게 이야기한다. 


공항직원같은 분 : 지금, 일반 택시 운행이 안됩니다. 쿠폰 택시 타고 가셔야해요. 

                    나 : 네? 그럴리가요. 공항 택시는 24시간 운행되는거 아녜요?

공항직원같은 분 : 아닙니다. 벌써 일반 택시는 운행을 안합니다.

                    나 : 그래요? 그럼, 큰 도로로 나가면 있나요?

공항직원같은 분 : 네, 근데 여기서 큰 도로까지 멀어서 힘들어요.

                    나 : 흠, 여기 호텔로 가려는데, 쿠폰 택시로 가면 얼마죠?

공항직원같은 분 : 750페소(한화로 약 2만원)만 내시면 되요.

               나 : 네? 여기서 2~3km인데 750페소라뇨?

공항직원같은 분 : 아, 그럼 600페소(한화로 약 1만 5천원)에 해 드릴께요. 


(마닐라 공항에는 일반택시와 쿠폰택시가 있다. 일반택시는 기본료 70페소부터 시작해서 간 거리만큼 내는 것이고, 쿠폰택시는 기본료 없이 구간마다 미리 정해진 금액을 내게 된다. 당연히 쿠폰택시가 일반택시보다 2배정도 비싸다.)  


호텔 공항마중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것에 잠시 후회가 된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공항에서 불과 2~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호텔에 공항마중을 신청했더라면 한화로 약 1만원을 지불해야하지만, 일반 공항택시로 가면 4~5천원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이다. 


우선, 일단 호텔에 전화를 했다. 지금이라도 공항마중을 신청하면 나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나 : 저기요, 지금 터미널 3인데요, 공항마중 서비스 신청할 수 있나요?

호텔직원 : 네, 잠시만요. (1분 후) 아, 지금 직원이 없어서 안되겠는데요.



난감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큰 도로로 나가자니 공항에서 큰 짐을 끌면서 한참을 걸어가야하고, 더구나 야밤에 위험하기도 할 것 같고, 그저 잠시 애만 태울 뿐이다. 그렇다고 쿠폰택시를 타자니, 호텔까지 불과 몇 km인데, 택시비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참,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쿠폰 택시를 타려고 발길을 옮기는데 그 순간, 눈 앞으로 노란색 일반 공항택시가 슥 지나간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조금 전, 공항직원 같은 사람이 일반택시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말에 나오는 문에서 오른쪽으로 30여미터 떨어진 일반택시 정류장은 보지도 않았는데, 분명 내 눈 앞으로 지나간 것은 노란색 일반 공항택시였다. 


                      나 : 저기 저 택시, 공항택시 아니에요?

공항직원같은 분 : 아니에요. 쿠폰 택시 타세요. 500페소 해드릴께요. 


이제서야 느낌이 온다. 공항직원같은 분한테 눈 한번 흘겨주고는 일반 공항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호텔까지 가면서 택시기사한테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물론, 그 택시기사는 내게 별 다른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서는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국가가 발전하고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빈부여부를 떠나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줄 수 있는 사회,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선진국일 것이다.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당장에 보이는 눈 앞의 이익을 쫓는 것이다. 순간 달콤할 수 있을지 몰라도, 거짓말을 내 뱉은 자신도, 그 말에 속아넘어갈 수 밖에 없는 낯선 사람도 모두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행의 시작, 우리 사회의 시작, 배려와 친절이 함께 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당장의 달콤한 속임수보다는 내가 타인에게 베푼 배려와 친절이 보상해주는 먼 훗날의 축복을 사모할 때다.


심옹의 여행수필 40편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수필 38 - 고난의 스키장, 가장 추었던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