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이별을 고했다!
변해버린 회사에 실망한 마음에..
떠날 때 미련 없이, 후련하게
떨치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련은 없어도,
이별의 슬픔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퇴직을 결심하기 3개월 전쯤 부서 이동이 있었다. 3년 전 이 부문으로 이동할 때 희망했던 부서로 옮기게 된 것이다. 소속 부문 내에서의 이동은 전적으로 담당 임원에게 결정권이 있다. 그런데 ‘맡은 일 훌륭하게 잘하는 친구를 굳이 옮겨서 시험대에 올리고, 기존 업무는 구멍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것이 담당 임원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한차례 이동에 실패했고, 포기했던 일이었다. 난 오히려 내려놓은 일인데, 작년 연말에 부문 내 팀장님들이 ‘이 일도 이렇게 잘하니, 다른 일은 얼마나 잘하겠냐’며 설득하셨다고 한다.
회사와 일에 대한 열정을 잃고 난 나에게는 이제 그런 게 의미가 있을 리 없었지만, 나를 위해 애써주신 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팀장님들은 나를 위하는 마음에 어렵게 이동시켰는데, 3개월도 지나지 않아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게 얼마나 죄송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도 적어도 1년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을 동력 삼아 회사를 더 다녀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상황도 나에게 전혀 자극이 되지 않았고,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이 섰다.
남편과의 상의 끝에 퇴직을 결심한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전에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월요일 아침부터 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운을 뗐다. “팀장님, 저랑 차 한잔하실래요?” 나중에 팀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먼저 차 한잔하자고 하길래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직감하셨다고 한다.
나는 주말 동안 어떻게 말씀을 드릴지, 이유에 대해 어디부터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무척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친밀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어쩌면 건조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의 팀장님은 나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라, 서로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다.
그런데 막상 팀장님과 얘기를 하면서, 나는 지난 10년을 회고하고 구구절절 내 심경을 털어놓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주마등이란 말의 의미가 새삼 와닿을 정도로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감상에 빠져버렸다.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해서 늘 연차 대비 성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특진까지 했던 내가, 업무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빼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얼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는지 성토하고 있었다. 나는 월급루팡이 되어서 회사를 다닐 수는 없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내 자존심이 그런 모습으로 회사를 다니는 나를 허락할 수 없다고.
팀장님은 차분히 내 심경고백을 들어주셨다. 내가 느끼는 회사에 대한 실망감이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회사를 훨씬 오래 다닌 선배들도 공감하고 있는 터라고 다독여 주셨다. 그리고 어쩌면 까마득한 후배의 회사에 대한 신랄한 실망감과 단호한 평가, 그리고 어줍지 않은 자기 도취도 비웃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회사를 다녀서 그렇게 다들 너를 신임하고 칭찬했나 보라며,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게 안타깝지만 너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셨다.
위로를 받았다. 나는 사실 위로가 필요한 줄도 몰랐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위로를 받았다. 내가 퇴직을 하기 전부터 농담 삼아하던 말이 있다. “저는 사기결혼 당한 것 같아요. 지금의 회사가 내가 알던, 내가 헌신했던 그 회사가 아닌 것 같아요. 자고 일어나 보니 남편이 다른 사람인데 어떻게 같이 살겠어요.” 결혼을 해 본 사람들은 짐작하리라, 저 말의 의미를. 나는 결혼하면서 청첩장에 ‘우리 두 사람이 하나의 인생을 살기로 언약합니다.’라고 썼다. 내게 결혼은 그런 의미였고, 내가 회사에 품은 마음도 그 엇비슷한 의미였던 것 같다. 운명공동체이자, 사랑하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대상. 그런 대상이 배신한 데 대한 감정은 단순한 분노가 다일 리 없다.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팀장님에게 퇴직 의사를 밝혔던 그 대화가, 나에게는 결국 회사에 이별을 고하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 돼서야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상처받은 나의 슬픈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조금은 울고 싶었다. 나는 아직 가까운 가족을 잃어본 적도 없고, 대학에 가서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옛 여자친구 조차도 그리워 눈물 흘릴 정도로 이별에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자각조차 못 했던 걸까.
나는 퇴직이 일생일대의 일탈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일생일대의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