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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Jan 12. 2023

목요일

내일은 목요일이야




내일은 목요일이니까 분리수거를 해야지







재활용 분리수거를 정해진 요일에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마다 아침 9시까지 할 수 있는데, 지난주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분리수거를 놓쳤다. 아이와 내가 독감으로 아파서 밀키트, 배달음식으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평소보다 빠르게 늘어나 금세 가득 찬 분리수거함. 내일은 꼭 해야 돼. 아이가 샤워하는 동안 분리수거할 재활용품들을 미리 현관 밖에 내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바로 할 수 있게. 2주 만에 주방 베란다가 깨끗하게 비워질 생각에 마음이 벌써 개운했다.





다음날 아침. 전날 일찍 잠들었는데도 잠이 모자라다. 더 자고 싶다, 피곤해. 아, 오늘은 방과 후 수업이 늦게 시작되는 날이네. 더 자도 되겠다. 금요일이니까. 자고 일어난 순간 깨달았다. 아이는 방과 후 결석을 해야 하고, 분리수거도 놓쳤다는 것을.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전날 다음날이 목요일인 걸 알았는데 아침에는 왜 금요일인 줄 알았던 거지. 대체 왜..? 하아..! 탄식을 하고 있으니 아이가 왜 그러냐며 일어났다. “아니.. 오늘 목요일인데 금요일인 줄 알았네. 수업 못 가겠어.” 엄마 못지않게 아침잠 많은 아이가 수업에 못 가게 되었다고 짜증을 냈다. 아니.. 수업 빠지는 게 아쉬웠던 적이 있나.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을 텐데 그 짜증을 낼 다른 빌미를 줬구나 내가.. 마음이 삐딱해졌다.





“뭐! 이미 늦었느니 수업 못 가는 건 어쩔 수 없고. 끝난 일이지 뭐.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다음 수업에는 늦지 말아야 하니까 얼른 준비해~“ 좋아하는 간식을 아침으로 먹고 곧바로 침대 이불에 쏙 들어간 아들에게 말했다. 여러 번의 채근 끝에 아이는 몸을 일으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방과 후 선생님께는 요일을 착각해서 못 갔다고 말씀드렸어. 늦잠 자서 그런 게 아니라.“, ”늦잠 자서 그랬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러니까..“





”대신 얼른 준비해. 다음 수업에는 늦지 말아야 할 거 아니야. 전 수업 빠졌다고는 얘기 안 드렸어. “ 아이는 이 말을 듣더니 지체 없이 신발을 신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지자는 아이의 말에 교문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켜보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뒤돌아 걸어왔다. 버리지 못한 재활용품을 들어서 현관에서 주방 베란다에 놓았다. 다음 주 목요일에 버릴 수 있겠네. 라면 끓일 물을 올리고, 건조대에 포개어져 있는 마른 식기를 정리했다. 어제저녁에 나온 설거지를 한 뒤 다시 건조대에 젖은 식기들을 올렸다. 커다란 박스에 발이 걸려 기우뚱한 몸을 바로 세워 커피 머신에 손을 뻗었다. 세척하고 닦아야겠어.





캡슐통을 기계 본체에서 분리해 내서 보니 커피 추출구 주변에 커피가 튀어 있었다. 주변에도 커피 자국들이 즐비했다. 더럽네. 기계 내부 세척부터 하려고 물탱크에 물을 500ml를 받아 꽂고 캡슐 커피를 넣지 않은 채로 커피 추출 버튼을 눌렀다. 갈색물이 나오고 커피 찌꺼기가 딸려 나왔다. 그 뒤로 두 번 더 하니 물만 나왔다. 커피 맛이 좀 좋아지려나. 물이 끓어 라면을 넣고 면을 삶은 뒤 물을 버렸다. 짜파게티처럼 분말수프 넣고 비벼 만들어 먹었다. 어린 시절 소울푸드를 먹으며 발자크 인생에 대해 들었다. <나귀 가죽> 지은 사람? 독서 모임에서 그의 책을 읽다 말았지만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라 아는 체할 수 있었다. 욕망에 솔직했던 그의 인생.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 발자크.





누네띠네 세 개를 접시에 담고 커피를 뽑아와 TV앞에 자리 잡았다. 배고픔과 나태함을 충족시키며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알쓸인잡을 다 보면 뭘 할까. 할 일을 만들어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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