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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Feb 12. 2023

게임을 그만두게 하는 방법

누가 먼저 그만두나




아이는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난다. 시리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세수하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 재빠르게 세수를 하고 나온다. 평온하게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평일 동안 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을 아이에게 “이제 세수하자”라는 말은 출발 신호탄이 된다.







8살 아들과 게임 전쟁을 벌였다가 ‘주말 이틀 원하는 시간대에 4시간 동안 게임을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게임을 시작해서 오전 9시나 10시가 돼서 패드에 전원을 끄며 아들은 즐거운 주말이 다 갔다고 했다. 마음껏 해도 (아들 입장에서는 아니겠지만..) 불만족하는 아들 모습에 아예 못하게 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중재로 한 번 참아 보기로 했다. 아침밥 먹고 세수한 뒤 9시는 지나야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고, 다시 주말 오전을 평화로이 지내는 중이다.





아들은 아들의 게임을, 남편은 남편의 게임을 하는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아들은 게임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 시각이 끝남과 동시에 소파에서 벗어났다. 용수철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고 있다가 손을 놓으면 바로 튀어 오르는 것처럼. 아이는 남편에게로 곧장 갔다. 게임 시간제한이 없는 아빠는 아이의 침대 위에서 자신의 게임을 이어가고 있다가 침략을 받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아빠의 평화가 깨지고, 정한 시간이 끝났음에도 게임과 관련되어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일어나는 자체가 싫은 엄마의 평정심이 흐트러진다.





남편 친구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 친구네 부부들과 뒤풀이를 간 날. 아들보다 한 살 어린아이가 포켓몬GO의 레벨이 훨씬 높고, 그의 아빠는 함께 게임을 해서 게임 지식이 풍부했다. 아들은 동생의 아빠에게 친구추가 방법을 알아내어 동생과 함께 게임을 했다. 같이 게임을 하는 건 어때? 아이 아빠에게 넌지시 던져 봤지만 시시할 것 같아서 하기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해야겠다. 남편 친구를 보기 전, 자신의 아들이 하는 게임에 대해 빠삭한 아이 학교 친구 엄마들을 놀이터에서 만났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게임으로 아들과 힘 겨루기를 하는 과정이 길어지자 게임과 관련된 모든 장면과 정보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인상 깊게 봤던 <푸름아빠 거울육아>에서 아이와 마인드크래프트를 아이가 원할 때까지 한 부모의 사례도 기억났다.





아이와 내가 하는 모습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포켓몬고를 깔았고. 예상했지만 남편이 더 열심히, 잘했다. 평일에는 떨어져 있는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면 연결이 되자마자 아이는 “아빠, 오늘은 새로운 거 잡았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나도 재밌었다. 어릴 때 아케이드 게임을 좋아했기에 같은 포켓몬을 일정 개수만큼 잡아서 진화시키는 재미에 매료되었다. 레벨업을 할수록 주어진 과제가 어려워져서 아들과 남편이 즐겨하는 레이드에 같이 참가했다. (게임 속 체육관은 실제 명소나 건물이라서 실제로 그 근처에 가야 참가할 수 있다) 셋이 함께 길을 걷다가 체육관(이라는 곳)에 가까워지면 걸음을 멈추고 빠르게 손가락을 눌러댔다. 결국 게임에 빠져서 평일에 도서관 가는 길에도 하고, 장 보러 가는 길에도 했다. 15분이면 다녀올 길을 멈췄다가 걸어갔다가를 반복하며 30분 넘게 걸려 걸어갔다. 주말마다 하는 아이보다 레벨이 높아졌다.





지겨워. 3개월이 되니 지겨워졌다. 새로운 포켓몬은 계속 나왔다. 몇 마리 잡아야 진화하지? 아 이 정도 잡아야 되네. 그걸 확인하면 과제를 확인했다. 이전 과제를 수행하면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지겹다는 말과 달리 그렇지 못한 손이 어플을 습관적으로 자주 켰다. 어제는 아이와 소파에 함께 앉아하는데 정말로 지겨웠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리고, 다른 게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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