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 사전투표를 선예약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다녀온 사전투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2시 30분.
일을 나가기 전에 '아버지, 저 아마 2시 30분 정도에 집에 올 거예요'라고 말하고 나왔었는데, 다행히 늦지 않게 집에 도착했습니다. 급할 일도 없는데 이마에 조금 땀이 날 정도로 서둘러 걸어 돌아온 것은, 분명 부모님이 한참 전부터 퇴근할 저를 기다리시며 앉아 계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이번에는 너희 모친도 투표소에 데리고 가야겠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악명 속에서도 치열한 선두 다툼이 지속되고 있는 이번 대선. 저희 아버지가 지지하시는 후보가 승리하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는 판세에 아버지께서는 초조하신가 봅니다. 투표를 며칠 앞두고 벌어진 두 후보의 단일화가 당선자의 윤곽을 더욱 가늠할 수 없게 만들자, 저희 아버지는 저를 불러 사전투표일에 두 분을 사전투표소에 데려다 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선거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폄하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투표를 하러 갈 때 꼭 갖춰 입고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릎 늘어난 운동복에 떡진 머리를 감춘 모자를 쓰고 가더라도, 신분증과 투표하고자 하는 후보에 대한 소신만 갖추고 가면 되는 거지 않나요?^^'
하지만 두 분은 본인들이 하실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깨끗한 옷을 꺼내 입으시고(심지어 저희 아버지는 손발톱도 다듬으셨습니다ㅋ) 제가 집에 오기 한참 전부터 나갈 준비를 하시고 계셨더랬습니다. "아니 아버지. 뭐 대단한 곳 간다고 그리 차비를 하고 계세요. 어차피 차 타고 다녀올 거, 그냥 집에서 입던 상태로 나갔다 오셨도 되는데 말이에요"라고 제가 핀잔을 드렸더니, "다음 대통령을 내가 뽑을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엉뚱한 대답을 하시며 얼른 투표소에 가자고 독촉을 하십니다.
사전투표소에 두 분을 모시고 다녀오는 길. '아버지 뽑으려는 후보가 될지 개표방송 지켜볼 때 마셔요'하며 마트에 들러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맥용 술과 안주도 사고, 오랜만에 집 밖에 나가는 어머니 기분전환 삼아 동네 한 바퀴 드라이브도 하고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사전투표소 앞에서 십여분 넘게 차분히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시는 두 분의 모습이, 왠지 좋기도 하고 찡하기도 해서 사진도 한 장 찍었구요. 조금 더 잘 찍어드렸으면 좋겠는데, 지금 보니 너무 엉망으로 찍어놨네요 ^^"
다음 대통령이 제가 원하는 후보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안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후보라면, 응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다음 대통령의 그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부모님이 이번 투표 때처럼,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으시고 투표소에 저와 함께 나들이를 가실 수 있으면 좋겠다... 는 제 소망은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이번에 사진 찍을 때보다 더 예쁜 옷을 차려 입히고, 더 많이 공을 들여 훨씬 괜찮은 사진을 찍고 말겠다는 다짐도 했구요.
이제 두 분과 함께 두근두근 개표방송을 지켜볼 시간이 하루 남았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후보가 당선되길, 우리나라가 조금 더 살기 좋아지길, 그리고 그 다음 대선의 투표도 개표방송 시청도 두 분과 함께 할 수 있길. 마음 담아 빌어보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