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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애 Jan 31. 2024

1년

꽃을 심으라 했다.

48시간을 일하고 오늘은 푹 자고 싶었다.

6시에 알람이 울리고

알람을 끄고 잠을 청하지만

옆에서 같이 자던 아이가 오줌이 마려운지 문 앞에서 서성인다.

꾸역꾸역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주고

잠을 청했다.

우리 막내도 쉬아를 하고 와서 다시 내 옆에서 잠을 청한다.

오늘은 별로 일어나기 싫은

상처가 있는 날…


아이를 보낸 지 벌써 1년이 됐다.


9시 반쯤 일어나

막내 약을 주고

내 방에 잊는지 모르게 그냥 자리 잡고 있던

상자 속의 아이를 창에서 내려서 상자를 열었다.

1년 만에 항아리를 보았다.

그만큼 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현실과 직시하지 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그냥 인정하고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경험은

사랑의 크기만큼 가슴이 베어져서

갈수록 남아 있는 가슴이 별로 없는 느낌이 든다.

그게 사람이든 반려견이든 반려묘이든 어느 반려동물이든 다 같다는 거다.

호주에서 처음 내 아이를 보냈을 때도,

한참을 잊지 못했다.


15년을 겨우 넘긴 딸이었던 우리 마리는

아쉬움이 없게 살았지만

대신 가슴에 묻었다.

그냥 내 가슴에 두고 살아간다.

떠났다는 상실감을 느끼거나 슬프지도 않게…

외롭게 지내면서 자꾸 불안이 엄습해,

결국 심장이 망가져가는 우리 아이를 지켜보며

조금은 조마조마하면서 살고는 있는데

무너지지 않으려고 무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열심히일하고 돈을 번다.


약값도 벌고, 불안감을 잊기 위한 도망인지도 모르겠다.

17년이 넘게 외로운 호주 생활을 반려견들과 함께 했고

호주생활이 25년이 넘었으니

반이상 이아이들과 뒹굴며 살아왔다.

거울을 보면

나도 늙어감이 보이고

아이들도 늙어가는 것이 보인다.

오랜 세월 사람보다 반려견들과 지낸 시간이 더 많다. 사람들은 흘러 갔어도 반려견들이 나의 가족으로 나를 지켜냈다.

어쩌면 신이 내가 안쓰러웠는지 반려견을 보냈다고 생각을 했다.

외로움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살아내라고 말이다.



오늘은

커다란 티브이 앞에 앉아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지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습관도 잘 고쳐지지 않는 몇 가지가 있는가 보다.

슬프면 가만히 있는 내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불혹이 넘고 오십이 넘어가니

슬픔을 티 내지 않고 무던히 사는 방법을 터득은 했지만… 난 완벽한 인간이 아니므로…

텅빈 마음을 채우는 방법은

채우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냥 가만히 몇시간을 앉아 있었다.


우리 막내는 내 슬픈 감정을 읽어내고 자꾸 와서 핥아댄다.

천천히 마시는 커피 한잔으로 아침과 점심을 대신하고  

몇시간을 멍 때리다가 온라인으로 쇼핑을 했다.


외로우면 하는 행동 중 하나가 온라인 쇼핑인데

무의식적으로 슬픔이나 외로움을 피하고 싶었나 보다.


두 아이를 떠나보낸 이 집을 떠나고 싶다.

환경을 바꾸어 살고 싶다.


2024년

남은 막내아이 심장병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담대해지자 말하지만

그날이 오면 그럴 수 있을까…


마지막 아이가 떠나면

식물을 심고 자연과 좀 더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

동물 말고 식물들과…


내거실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지내겠지…


더 이상은 저렇게 순수한 눈을 가진 아이들과 헤어지고 싶지가 않으니까…

보고 싶구나 우리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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