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월애 Jul 02. 2024

비 오는 저녁

겨울비는 국물로 외로움을 달랜다

저녁이 되니 비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낮에 해가 나서 산책도 시킬 수 있었고 해가 났을 때 아이 목욕도 시킬 수 있었다.

삼 주 휴가 동안 한두 번 잠시 외출을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

아픈 아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이상하게 마음이 외롭다

인터넷으로 eBook을 쇼핑하고 책을 읽기도 하지만 사실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억도 나지 않고 모든 것이 다 귀찮아서 읽다만 책 이 몇 권이고  열심히 책을 읽어야지 했는데 벌써 세 번째 화요일이 지나고 있다.


창문에 저녁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서 뭘 사 먹고 올까 하다가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차마 외출을 할 수 없었다.

방 안에 앉아 있다가 터벅터벅 방문을 열고 나가서 키친으로 향했다.


썰어 놓은 무를 꺼내고, 냉동실에서 멸치 봉지를 꺼내서 주머니에 몇 개 담아 물에 넣고, 양파를 썰어 넣고 건강에 좋은 마른미역도 집어넣고 생강도 넣고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물이 끓으면서 따스한 안개가 부엌공간을 데운다.

거기에 우동국수를  넣고 김치 국물 남은 것도 넣고

마늘도 좀 넣고

펄펄 끓이다가 야채를  넣어서

얼큰한 우동으로 저녁으로 먹었다.


따스한 국물이라도 삼키면 외로움이 조금은 녹아내린다.

저녁을 먹는 동안 한국드라마를 켜놓고 식사를 하지만 사실 집중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한국어가 들리면 좋으니까…

그냥 좋아하는 드라마 아무거나 틀어 놓으면 주인공인 그녀와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말이면 더 따스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가스레인지를 닦고, 마른 그릇들은 챙겨 다시 수납장에 넣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만들어 방으로 들어왔다.

둥글래 차를 마시면서

오랜만에 김동률 노래를 들어본다.

아이는 밥 먹고  침대 밑에 들어가 잠을 청했나 보다.


다시 조용히 침대 밑을 확인하고

차 한잔 마시면서

음악소리 그리고 빗소리를 간간히 듣고 있다.


몇십 년을 살아도

없어지지 않는

만성 질환,

향수병

요즘 다시 도졌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난 왜 이렇게 오래 살고 있는 걸까…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또 하고…

알고 있는 답을 다시 묻곤 한다.

너무 오래 살아서 여기가 내 집이 되어버린

이 익숙한 도시…

너무 익숙한 것이 낯설기까지 한…

이도시에 겨울비가 28년째 내린다.


갑자기 비 오는 신촌의 거리가

대학로가

송파대로가

리어카의 무수한 장미꽃들과

떡볶이와 어묵국물과 튀김을 파는 포장마차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88 도로가

아주 오래전 서울을 떠나기 전의 그 모습들이

그. 립. 다.

매거진의 이전글 1인 가구의 타지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