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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pr 22. 2021

실수에 조금 담담해져 본다.

  7월의 수요일이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 진료일을 한 번 더 확인해달라고 했다. 목요일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휴가를 신중하게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 왼쪽 가운데 발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난 뒤로 8개월이 될 때까지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 문제가 될까 봐 걱정하다가 대학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부엌 조리대 위에 놓인 탁상 달력을 집어 들었다. 달력에는 이유식 식단과 재료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 사이에서 날짜 10을 찾아서 시선을 한 칸씩 위로 옮겼다. 그리고 ‘THR’라는 글자를 확인했다. 달력 여백에 ‘10일, 9AM, 중앙대병원, 최교수님’이라고 적힌 메모도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10일 목요일 맞아요.”



   다음날 남편은 휴가를 사용했다. 우리는 9시까지 늦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와 함께 나가려면 왜 이리 준비할 게 많은지. 결국 예정 시간보다 늦게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병원 입구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 입장 전에 문진표를 작성하고 발열체크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9시가 다 되었기에 마음이 불안해져서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동동거렸다. 병원에 들어서서 접수 후 남편과 함께 정신없이 달려서 정형외과 대기실에 도착했다. 에어컨이 켜진 건물 안이었는데도 몸에서 열이 식지 않았다. 간호사가 영수증을 받고는 컴퓨터를 확인하면서 갸우뚱거렸다.


“오늘은 진료를 받을 수 없으세요.”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간호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남편도 내 옆에 서서 움직임이 없었다. 간호사는 병원 영수증을 다시 우리에게 보여줬다. 진료 예약일이 10일 금요일이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몇 주 동안 내게 10일은 목요일 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금요일이 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핸드폰을 켜서 날짜를 확인했다. 9일 목요일이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려 대기실을 나갔다. 나는 아기를 안고 숨 막히는 그 공간을 느릿느릿 걸어 남편 뒤를 따랐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 안에서 남편과 나, 아이의 시간만 느리게 흘러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 실수를 곱씹는 그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부엌으로 가서 탁상 달력을 확인했다. 까만 글자가 채워진 달력에서 숫자 10 찾았다. 전날처럼 시선을 위로 옮겨서 요일을 확인했다. ‘THR’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10일의 요일이 아니었다. 오른쪽에 있는 ‘FRI’ 손가락으로 짚어 일직선으로 내려보았다. 10일에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계속   보고 있었구나.


  자책은 끝없이 이어졌다. 정말 여러 번 확인했는데도 어떻게 아이 진료일을 틀렸던 건지. 생각은 점점 더 깊은 굴을 파고 들어갔다. 내 실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잠든 오후에 다시 탁상 달력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작은 깨달음이 나타났다. 여전히 10일이 목요일로 보였던 것이다. 결국에는 일어날 일이었구나.


  탁상 달력의 날짜는 왼쪽 정렬이었고, 요일은 오른쪽 정렬이었다. 10일은 ‘THR’와 더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목요일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다시 확인했더라도 목요일로 봤겠구나. 어쩌면 피할 수 없던 일이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덤덤해졌다.


  다음 날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시아버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데리고 대학 병원에 갔다. 전날 와본 덕분에 한결 여유 있게 정형외과까지 이동했다. 긴 여정 끝에 아이 발가락은 그대로 두고 키워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실수도 인생의 일부라는 생각을 한다. 실수 없이 뜻대로만 되는 인생은 없을 테니 말이다. 어느덧 17개월이 된 우리 아이는 걷고, 계단도 오른다. 오후에 아이가 철쭉이 핀 산책길에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오늘따라 아이가 유독 자주 넘어졌다. 나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아이고, 오늘은 우리 아가가 넘어지는 날인가 보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다시 신난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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