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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pr 16. 2021

아직 젊음인가 봄

  16개월 아이와 함께하는 봄날의 아침은 분주하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아침을 먹이고, 씻기고, 로션도 구석구석 발라주고, 도망 다니는 아이를 좇아 다니며 옷을 입힌다. 어린이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마스크를 쓰려고 잠깐 거울을 마주했다. 오늘따라 유달리 눈밑 주근깨가 눈에 띄었다. 점점 화사해지는 햇빛과 조금씩 피어나는 꽃들과 달리 내 얼굴은 점점 칙칙해지고 주근깨만이 햇빛을 받아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눈밑 주근깨를 가리려고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바짝 당겨 썼다.



  아이는 바깥으로 나오자 몸을 흔들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파란색 와플 카디건에 붙은 하얀색, 빨간색 포인트가 아이의 움직임을 더욱 발랄하게 해 줬다. 아파트 단지 안, 벚꽃이 피어나는 나무 아래로 아이가 걸어 들어가니 영락없는 봄 풍경이 완성되었다. 나는 무채색 셔츠 위에 원래 신랑 것이던 어두운 남색 카디건을 입고 아이를 좇아 걸었다. 나만이 이 봄 풍경 속에서 겨울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어린이집 방향에서 한 여자가 다가오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인 은이의 엄마였다. 은이 엄마는 은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은이 엄마는 카페로 출발하고, 나는 아이를 안고 벚꽃길을 후다닥 걸어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은이 엄마와는 요 몇 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카페에서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지지난주 만남에서 피부이야기가 나왔다. 은이 엄마는 사십 대 초반이었는데,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화장이며, 피부관리를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했다. 얼굴 피부에 나이가 스며들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가 없다. 은이 엄마는 피부과에 갈 생각이라며, 삼십 대 중반인 내게도 늦지 않게 관리를 하라고 했다. 그 뒤 은이 엄마는 피부과에서 잡티 제거를 했고, 일주일 간 외출을 삼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서 카페에 나온 것이었다.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아줌마가 나라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었는데, 은이 엄마의 이야기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은이 엄마의 피부가 확연히 밝아졌다. 아침에 거울로 본 눈밑 주근깨가 갑자기 신경 쓰였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다시 아이들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이 이야기라면 끝이 없었기에 2시간이 후루룩 지나가버렸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카페를 나섰다.



  제법 따뜻해진 4월 초 봄바람을 맞으며 아파트 단지 안을 은이 엄마와 걸었다. 우리 수다는 걸으면서도 이어졌고, 공감되는 육아 상황에 서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은이 엄마 아파트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정면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셔서 손을 눈 위에 가져다 대고 걸었다. 은이 엄마 아파트 앞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은이 엄마가 할머니께 밝게 인사했다. 할머니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어떤 말씀을 건네셨다. 은이 엄마가 몸을 할머니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네?”하고 다시 여쭸다.


“젊음이 참 예쁘다고~”


할머니는 젊을 적에 어른들이 예쁘다고 하면 ‘예쁜 걸 보고 예쁘다 해야지 저게 무슨 소리야?’ 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씀하시고는 어딘지 아련한 표정을 지으셨다. 할머니는 삼십 대 중반과 사십 대 초반인 우리에게 젊음이 참 예쁘다는 말을 다시 한번 넌지시 던지셨다.



  직장인이 되고 얼마 안 되어서 여대생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한 적 있었다. 버스에서 신입생처럼 보이는 여학생을 보면서 ‘참 빛난다’하고 생각했다. 어설픈 화장과 어색한 옷차림도 신입생의 반짝거림을 가릴 수는 없구나 싶었다. 젊음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그날 처음으로 해봤다. 내가 신입생 때 그저 예쁜 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속으로 아쉬워하며 사회인이 되어 칙칙하기만 한 20대 중반의 내게 눈을 돌렸다.



  우리는 할머니께 까르르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은이 엄마는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에 내게 할머니 말씀이 너무 이해된다고 했다. 사십 대인 자신이 삼십 대인 나만 봐도 할머니와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나는 은이 엄마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20대 초반에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젊음이 예쁘다’는 말을 내가 들으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방금 전까지도 삼사십 대 아이 엄마가 된 우리 모습을 서로 안타까워했는데, 할머니가 보기에는 우리도, 은이 엄마가 보기엔 나도 아직은 젊음이었던 모양이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서 지금 나는 너무 나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십 대가 돼서, 할머니가 돼서는 지금이 예뻤다고 그리워할 나이였던 것이다. 지나갈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젊은 시간이었다. ‘오늘이 제일 예쁘다’는 말은 오늘이 가장 젊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다. 할머니의 말에서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은이 엄마와 헤어지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지났던 벚꽃나무 아래를 걸었다. 아침에 이 길을 걸을 때는 형형색색 옷을 입은 아이만이 벚꽃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도 벚꽃과 봄 풍경이 되어 걷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나도 젊음이구나. 어쩐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벚꽃잎이 산들산들 떨어지는 길을 사뿐사뿐 걸으며 오늘의 젊음을 즐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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