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Jun 04. 2021

우울함이 오려나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몽롱하다. 간밤에 악몽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아이 방으로 두 번 갔던가, 세 번 갔던가. 18개월 아이는 아토피로 인한 피부 가려움을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새벽마다 울어댔다. 아침에 아이 방으로 가는 발걸음은 어기적거리고, 아이 얼굴을 보고 웃는 얼굴은 부어서 웃는 모양도 어색하다.


  영 정신이 깨지 못해 아이에게 아침을 주며 커피를 내린다. 향긋한 커피 향이 집안에 퍼질 때면 기분이 은근슬쩍 오르곤 했는데. 커피 머신 소리는 요란하게 돌아가지만, 커피 향이 느껴지는 것 같지 않다. 구글 스피커를 불러서 신나는 동요를 틀어달라고 하고 아이 대각선 방향으로 베란다를 마주 보고 앉았다. 베란다 앞 벚꽃나무에는 초록이 무성해져서 햇빛이 밀고 들어올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햇빛은 나무 가장자리를 따라, 나뭇잎의 빈틈을 찾아 들어왔다.


  요 며칠 걷기라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체력이 부족해서 몸이 쳐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걷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집에 와도 눕지 않았다. 리모컨으로 TV를 켜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평소 보는 프로그램이 없으니, 어떤 프로그램을 봐도 시큰둥했다. 결국 예전 범죄 사건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했다. 웃기지는 않았지만, 다른 생각 없이 집중하기에 좋았다.


  TV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파에 머리를 기대도, 베개와 이불을 가지고 나와 거실에 누워도 머리는 점점 더 터질 것처럼 아팠다. 타이레놀을 먹고 30분이 지나도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TV를 켜 둔 채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을 그대로 두고, 베개와 이불만 다시 챙겨서 안방 침대에 가서 누웠다. 집안에 들리는 TV 소리가 어쩐지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점심에 맛있는 걸 먹어보려고 억지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평소 좋아하는 떡볶이나 불닭볶음면을 생각해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먹느니 다시 쉬기로 했다. 두시 삼십 분이 되면 40분 알람을 맞추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세시 삼십 분이 되기 전에 두통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잠은 들지 않고, 두통도 그대로 인 채로 세시 삼십 분을 맞이했다. 아이가 저녁에 먹을 음식도 만들지 못했다. 냉장고에서 두유 한팩을 꺼내 먹고 손으로 머리를 눌러대며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요 며칠 동안 나는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새벽에 우는 아이 울음소리를 가만히 견뎌주지 못해서 울기도 했다. 새벽에 아이를 달래고 나면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을 켜서 하소연을 적어내리다가 결국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면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사진만 보곤 했다. 나는 힘들게 잠든 아이 옆에 잠시 누웠다가 안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2시간 뒤에 마주한 아침은 오늘처럼 몽롱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두통이 느껴졌다.


  오늘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한두 달 전쯤, 해소되지 않던 두통이 마사지를 받고 좋아졌다. 지속되는 두통에 몸도 정신도 분명 같이 처지고 있었다. 하루빨리 두통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주에 급히 마사지를 예약했다. 오늘은 아이 등원 후에 마사지 샵으로 향했다. 뒷목과 뒷머리를 풀고, 머리에 침까지 맞고 나니 머리에 맑은 기운이 도는 듯했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밝은 기운으로 아이를 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마사지샵을 나왔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먹은 게 없어서 일까. 집에 가면 꼭 뭐라도 먹어야겠다. 버스를 타고 창가 좌석에 앉았다. 창 밖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눈이 부셨다. 색색깔 간판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사람들이 밝은 햇빛을 받으며 이리저리로 걸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생동감 있게 보였다. 부러웠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반쯤 처진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결국 피할 수 없나 보다. 우울함이 오려나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울음소리를 견디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