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Jun 06. 2021

방임과 간섭 사이 적당한 어딘가 <prologue>

  초등학교 시절에 방 한구석에서 전과를 펼쳐놓고 공책에 글자를 옮겨 적던 기억이 있다. 어두운 저녁이었고, 자려고 바닥에 이불을 펼쳐둔 상태였다. 나는 이불 위에 남은 바닥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서 학교 숙제를 했다. 그때 엄마가 부엌일을 하다가 내게 빨리 자라고 소리쳤다. 엄마 목소리에 나는 급하게 글자를 옮겨 적었다.


  나의 부모님의 육아방식은 ‘방임’에 가까웠다. 부모님은 당시에 모두 일을 하셨다. 그래서 초등학생 시절에는 밤 9-10시까지 부모님이 없는 집을 오빠와 단 둘이서 지키는 날이 많았다. 부모님은 내 학교 숙제나 준비물을 묻는 일이 없었다. 자연스레 나는 스스로를 챙기며 성장했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어른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방 한구석에서 숙제를 하던 나는 부모의 관심을 바랐던 것 같다. 그날의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고 싶었다. 그래서 숙제를 하면서도 빨리 자야 한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결국 가족이 모두 잠들고, 불 꺼진 집에서 나는 작은 불빛 아래 앉아 혼자 숙제를 끝냈다. 그때 어두운 방에서 혼자 느꼈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길 바랬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뒤로는 아이의 동작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졌다. 아직 말도 못 알아듣는 아기를 앞에 두고 끊임없이 떠들기도 하고, 아이의 눈빛, 몸짓에서 아이의 의도를 찾아내려고 했다.


  아이가 돌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장난감을 흔들어주고, 창밖을 보여주며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보아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울었다. 그동안 내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다며 했던 행동들이 아이에게 오히려 독이었던 건 아니었나. 문득 생각이 스쳤다. 아이가 내게 생떼를 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한 친구가 있었다. 대학과 학과 고민을 나눌 어른이 없어 외로워하던 나와 달리, 친구는 엄마와 대학 입시 배치표를 펼쳐두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친구는 엄마에게 매번 모의고사 성적표를 공유했고, 친구에게 부족한 과목은 엄마가 직접 챙기기도 하셨다. 그런데 친구는 엄마가 챙기는 게 싫은 눈치였다.


  나는 한편으로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언젠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적이 있다. 시험기간에 공부하다 잠들면 엄마가 뺨을 때린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대학과 학교는 엄마가 이미 정해놓았고, 친구는 점수를 맞춰야 했다. 친구는 엄마가 정해놓은 대학과 학과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싫어했다. 당시 친구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다며 일부러 공부를 하지 않았다. 친구는 엄마의 지나친 관심에 답답해했다. 어느 순간 나도 고등학교  친구 엄마처럼 ‘간섭 하게 되는  아닐까.


  ‘방임하는 엄마는 아이를 외롭게 하고, ‘간섭하는 엄마는 아이를  막히게 한다. 방임과 간섭 사이 어딘가 적당한 지점이 있을 텐데. 나는 어떤 순간은 ‘방임같아서 겁나고, 어떤 순간은 ‘간섭같아서 겁이 났다. 나의 육아는  ‘방임 ‘간섭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방임’도 ‘간섭’도 아닌 적당한 관심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적당히’의 범위를 가늠하지 못하겠다. 요리를 할 때도 적당한 양의 소금을 넣으라는 말이 쓰이는데, 사실은 간을 딱 맞추라는 소리다. 나는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려던 걸까.


  사실 완벽한 엄마는 불가능하다. 요리도 사찰 요리나 남도 요리처럼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적정 소금의 양이 다를 텐데. 엄격한 엄마와 친구 같은 엄마, 같이 울어주는 엄마와 울 때 안아주는 엄마가 가져야 할 적당한 관심도 다르지 않을까. 그동안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그려보지 않았다. ‘적당히’라고 뭉뚱그린 추상적인 말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고민하고 들여다보다 보면 ‘방임’과 ‘간섭’ 사이 나만의 적당한 지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맘스홀릭베이비 카페에서 엄마칼럼니스트로 글을 게제하기로 했어요. 앞으로 <어떤 엄마가 될까>라는 고민을 육아 동지들과 나누는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


https://cafe.naver.com/imsanbu/5597848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