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붉은 벽돌에 새겨진 시간, 치앙마이 원님만 산책

- 문화와 감각이 교차하는, 느릿한 창조의 거리 -

by 마르코 루시

치앙마이 원님만의 붉은 벽돌 광장에 발을 디딘 순간, 코끝에 스며드는 향이 있다. 갓 볶은 커피 원두의 깊은 아로마와 목재의 은은한 향, 그리고 멀리서 풍겨오는 태국 향신료의 복합적인 냄새가 하나의 교향곡처럼 섞여 든다. 시계탑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붉은 벽돌 위에서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손끝으로 만져보는 벽돌의 거친 질감에는 몬순 기후가 새겨놓은 미묘한 홈들이 있고, 뜨거운 태양 아래 구워진 점토의 단단함과 동시에 열대 특유의 축축한 온기가 공존한다.


원님만은 님만해민지역에 있다. 님만해민이라는 이름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에서 따온 것이다. 한때 이 거리는 단순한 국숫집과 소박한 주택들이 늘어선 평범한 동네였다. 치앙마이 대학교 근처라는 지리적 특성이 이곳에 젊음의 활력을 불어넣었고, 시간이 흘러 이곳은 창조적 에너지의 집약체가 되었다. 2017년 겨울, 님만해민 사거리에 시계탑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부터 치앙마이의 시간은 새로운 리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옹-아드 건축가가 설계한 원님만은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서는 문화적 실험이었다. 동서양의 건축 언어를 하나로 엮어낸 이 공간은 특히 란나 왕국의 전통 건축과 13세기 네팔 네와르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15세기 프랑스 몽파지에의 마켓 홀에서 영감을 얻은 목조 시장 건물은 세기를 뛰어넘는 건축가의 야심 찬 실험처럼 느껴진다. 700년 란나 왕국의 수도였던 치앙마이의 역사적 DNA가 현대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전통적인 란나 건축과 현대적 디자인 요소가 만나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유럽식 아케이드를 걷다가 갑자기 마주치는 태국 전통 목조각, 모던한 갤러리 옆에 자리한 향신료 가게의 진열대. 그래프 카페에서 장인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라테 위에 그려지는 정교한 라테 아트를 보며, 진저 팜 키친의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타이 퓨전 요리를 맛보며 깨닫게 되는 것은, 진정한 문화적 융합은 서로 다른 것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은 완벽한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몰려들지만, 정작 이곳의 진짜 가치는 그런 표면적 아름다움 너머에 숨어 있다.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자국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모습에서, 글로벌 시대 아시아 도시들이 나아갈 방향의 단초를 본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공간이 주는 메시지가 명확해진다. 이곳은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의 중심이다. 어느 토요일 저녁, 시계탑 아래에서 우연히 마주친 스윙 댄스 클래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태국인 젊은이와 독일에서 온 배낭여행자, 현지에 정착한 일본인 부부가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에서 깨달았다. 진정한 여행지란 완벽하게 계획된 무대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보며, 여행자는 그런 일상 속으로 잠시 끼어드는 손님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원님만 시계탑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시계탑은 단순한 시간의 표시가 아니라 상징이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에 대한 은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원님만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곳.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깨달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 복합적인지, 그리고 그 복잡함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원님만의 붉은 벽돌들이 품고 있는 것은 건축 재료 그 이상이었다.



keyword
이전 04화치앙마이 선데이 스트리트 마켓